사각사각 거리는 소리

 시작에 관해서 글을 쓰는 주제를 받았을 때 많은 고민속에 연필을 쥔 내모습을 보며 생각난 소리였다.

 

 '시작-'

 원장 선생님이 교탁에 서서 A4종이 묶음을 탕탕- 두번 치고 종이를 나눠 준 뒤 외친 말이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온 친구 하나가 책상위로 딱딱딱딱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간 소리를 내며 열심히 단어를 내리 적었다.

빠르고 정확했다. 원장 선생님은 "그래 ! 이거야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소리-!!"라며 소리를 지르셨다.

그건 분명 지르는 소리였다.

 

 시험을 치르는 나에게 '시작'은 긴장의 대상이었는데 원장선생님에겐 어떤 것이었을까?

 

 시작을 생각하며 어제 책쓰기 시간에 20분을 거의 다 쓴거같다.

20분 동안 글을 쓰는 시간이었는데 생각을 하느라 시간을 거의 써버려서 글을 거의 적어내지 못한거 같다.

 처음 느꼈다. 시작에 대해서 생각을 별로 크게 해본적이 없다는 걸. 시작이 주는 이미지/느낌은 내게 너무 당연했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연필을 절대 서있게 하진 말자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에 대해서 일단 써나갔다.

 첫 문장이 '시작을 순간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소개하고싶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개하고 싶은 대상은 온전히 '나'였다.

나는 나에게 '네가 가진 시작의 이미지를 다르게 봐보자, 이렇게 까지 무덤덤하게 시작을 느끼는지 몰랐어'라고 속으로 말을 걸었던거 같다.

 

 그렇게 '시작'에 대해서 파고 들다 보니 아무래도 감정이 빠지지 않는게 재밌게 느껴졌다.

 

 시작은 시작 '전'이라는 순간이 주는 '설렘'이나 '긴장감'과는 전혀 닮지 않았고, 시작 '후'에 느끼는 '기대했던 것과의 차이' 나 '감동'은 시작인 순간과는 엄연히 다른 형태였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시작 '전',시작 그리고 시작 '후' 이 세가지로 시간을 나눈다. 그리고 그 세가지의 감정이 하나의 이야기가 됐을 때 이를 '경험' 혹은 '경험의 느낀점'이라고 부르는거 같다. 그 곳에 우리가 말하는 수만가지의 '감정'단어가 들어간다.

 시작은 '순간'이 아니라 감정주머니라는 걸 이때 느꼈다. 사람들과 모여 앉아 시작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때 나포함 대부분이 그때의 감정이나 경험을 꺼내는걸 보면 말이다.  

  

 설렘에서 행복으로 가기도 하고, 행복에서 좌절, 좌절에서 무던함으로 바뀌기도 하는 모습을 보자니 시작은 행동을 대신하는 단어가 아니라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세상 모든 것은 하나의 뭔가로 정의내리기 어렵다.많은 연결 고리들이 얽히고 설켜있어서 이 입장을 고수하자니 저 입장이 떠오른다.

 그래도 시작 전 감정주머니에서 자주 만나는 '부담'을 있는 그대로 이뻐해주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종종 시작 전과 시작, 일련의 과정을 두려워 한다.

막상 진행되면 걱정은 순탄하게 잘 흘러갔고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그것들은 나의 시간을 먹고 자라 경험으로 나에게 왔다.

 경험 데이터들이 쌓여 이제는 두려워도 시작 이후의 재미를 생각하는 경지에 올랐다. 두려움 이후의 재미를 찾는 마인드가 내 몸 곳곳에 박히게 된것이다.

그래서 점점 내 스스로가 성공자 반열에 올랐다고 착각했다.


그런데 아직 나는 두려움을 두려워 하는 나를 있는 자체로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어떤 감정이든 그 자체를 이뻐해 보자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착각은 나를 애쓰게 만들었고 마음 속 내면의 떨림을 억지로 누르고 극복하게 만들었다. 


 EBS에서 출간된 기억력의 비밀이라는 책에 보면 뇌에 대한 연구 내용이 담겨있다.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 감정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한다.

 두려움을 느끼거나 위험을 감지하는건 야생에서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했다. 그게 아주 옛날부터 사람 몸에 체화됐고 이제는 필수불가결이라는 것이다.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한 감정이기에 억지로 누른다는 것도 과할 때는 문제가 된다. 그리고 끓는 냄비를 억지로 누르면 폭팔하는 것과 같다.

프레임을 부시거나 바꿈으로서 발상의 전환도 가능하지만, 그 자체를 사랑해 보는건 어떨까.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억지로 뭔가를 이뻐하는 것 보다 시작의 모든 순간에 나라는 존재가 늘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그저 소중하고 사랑스럽다는 걸 받아들인다면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 우리는 어떤 것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시작의 모든 순간은 감정주머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감정들은 모든 순간에 사건들과 함께 버무려져서 이미지와 추억으로 내 안에 남는다.

 내 안에 남은 것들이 쌓여 나와 함께 나이 들어 가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작에 다양한 감정들이 섞여있을까?

 그리고 이 글을 함께 나누며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엔 어떤 경험의 순간과 그 감정이 들어 있을까?

 

 하나하나 같이 보지 못해 아쉽지만 상상만으로도 행복하고 공감된다.

 참 아름다운거같다.

 

-꿈모닝 책쓰기 2주차 토요일 주제 : 시작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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