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년전의 일이다.
한 상담가에게 내 진로에 대한 걱정을 털어 놨었고 그 상담가는 진실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굉장히 유명한 취업 컨설턴트를 알고 있으니 물어봐주겠다고 한다. 물어보는 이유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어렸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굉장히 국한되어있는 어린 풀이었다.

그리고 그 상담가와 컨설턴트는 장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 다 한번도 만나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나는 내꿈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놓치고 싶지 않은 꿈은 불꽃연출가였고 그 계열에 대해 컨설턴트라면 나보다 알수있는 방법이 있지않을까 생각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여자라서, 임신해야하는 몸이라 어느 누가 화학 물질을 만지는 현장에 두겠냐고 다그쳤다. 또 내가 한국에 있는 화약계열사 쪽을 이야기 했을때 그곳은 그런 계열사가 없이 원래 그게 이름이다. 이런 기본 적인 지식도 없이 어떻게 진로를 정한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늬앙스로 두사람이 나를 평가했다.

 그때 처음으로 남에게 도움을 준다는건 어떤건지 스스로 고민해보는 시간도 가졌던거 같다.

 도움을 요청하는 자에게 긍정적이고 밝은 방법을 찾는 것이 도움인지 현실을 인지시키는게 도움인지 딜레마에 빠졌었다.

 그 당시 내가 그들에게 상담비로 제시한건 커피 한잔 값이 었는데, 그 값으로 유명한 컨설턴트에게 엄청난 도움을 받으리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런 쪽으로 찾아보세요 라는 전문가의 방향을 듣고 싶었긴 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계열사가 아니라 그게 본 이름이다라는 이야기 하며 내가 말한 사실에 대해서 답답하다 표현했을 때 부터 그들은 나의 미래에 대해서 나처럼 고민해줄 생각이 없다는 걸 알게되었다. 

 그 계열 팀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틀리지 않았었다.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였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였기까지 삼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못가는 이유를 줄줄이 들었을때 나는 나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사관학교를 포기할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상상도 하기 싫다. 그런데 갈 수가 없고 마음이 머물지 않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도 또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좋은 운을 가진 사람이라는 확신은 있는데 왜그렇게 나는 내가 원하는 미래의 나를 만나기는 어려운걸까. 이렇게 살아 뭐하냐는 생각까지 잠깐 했었다. 그런데 생각은 잠깐이어도 내 마음에 남은 나에 대한 불신과 패배감은 삼일이 갔다.

 

 상담가는 내가 만나본적은 없지만 알고있는 언니였고 컨설턴트는 그 상담가가 잘 알던 지인이라고 했다. 그들은 나의 진로를 놓고 서로 카톡으로만 대화를 나눴고 상담가는 그 카톡내용을 캡쳐해 보내며 유명한 컨설턴트니 이 조언이 정말 현실이라고 슬프지만 받아들여서 진로를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내가 그 상담가를 자청한 언니에게 물었다.

​ 언니, 제가 그렇게 쓸모없나요?

내 답이 예상치 못했던 답인지 허둥지둥 나를 달래려 하던 그녀의 카톡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날 정말로 슬펐다. 펑펑 울고 싶은데 이를 악물고 버텼다. 왜냐면 내가 2016년 부산항불꽃축제를 보기 위해 산복도로에서 수많은 사람들속에 쌓여 불꽃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강연을 나가거나 이야기를 들려줄 때 빼먹지 않고 말하는 불꽃놀이와 나의 인연에 관한 사건이 있다. 그건 내가 처음으로 불꽃이 나만의 설렘이 아닌 모두의 동심을 건들이는 예술이구나를 알게 해준 그 때이다.

 

  그동안 사는게 바빠 잠시 잊고 지냈는데, 그 운명의 미소를 만난 날은 2시간 전 상담가들로 인해 진로로 좌절을 겪은 날이었다.

 

 2016년 5월 부산항축제를 보기위해 산복도로에 있던 나는 진로를 포기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슬픔을 억누르고 하늘위에 터지는 커다란 꽃을 보고있었다. 왜 저걸 내가 못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었다. 그러다 그냥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어 부산항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가는 내내 하늘위에 터지는 꽃을 보며 무거운 마음이 잠시 잊혀지고 기쁨과 설렘으로 바꼈었다. 그리고 부산항 입구에 도착해서 본 것은 시끄러운 소리를 잊게 만드는 핸드폰에 불꽃을 담고있는 한 아저씨의 미소였다. 그때의 전율을 잊을 수 없다. 그때 만난 내 삶의 목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동심이 담긴 미소를 나는 평생 보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대로 포기 할 수 없다는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저걸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가득 머릿속을 채웠다.

 

 그 미소가 나를 살아있는 존재라는 걸 알게 했었다.

 그들과는 이제 그 어떤 연락도 닿지 않는다. 이미 그때 그들의 존재자체를 잊었다. 이름도 기억안나는 저 먼 우주의 존재들이 되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 우연히 82년생 김지영 북pt를 준비하다 생각이 났다. 그 날 오전의 그들과 그날 오후의 그 미소가 모든게 생각이 난것이다.

 그들이 만류하고 안될거라 둘이서 고개를 저어가며 온 마음으로 안타까워했던 나는 2017년 포항불빛축제, 서울불꽃축제, 부산불꽃축제를 참여하며 꿈을 마음껏 현실로 실현시키는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내가 만약 연출가가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 혹은 쌓아야할 스펙을 줄줄 나열해서 들었다면 그 운명의 장면을 어떤 마음으로 봤을지, 아니 보기는 제대로 봤을지 알수가 없다. 어쩌면 그냥 고개돌려 스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내가 저걸 곧 하겠구나 라는 생각에 빠져서 가장 중요한 목적을 잃어버린 채 살아 갔을지 모른다.

 

 누구보다 빠르게 불꽃연출가가 되었을 지언정 또 후회했을 수 있다. 이게 내가 원하던 일인가, 내가 진짜 왜 이걸 하려고 했나 그때가 되어서 또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안되는 이유에 오기가 생겨 불꽃놀이를 더욱 가슴 아프게 그리고 뜨겁게 봤다. 하고싶다는 소망을 하늘위에 퍼지는 불꽃과 함께 풀어내며 눈물나게 가슴 아픈 현실을 억누르며


 내가 그렇게 쓸모없냐는 질문을 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제는 너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여전히 넌 안돼였으니 얼마나 상처였을까. 그만큼 잘 살고 싶었던 나는 여전히 아파야하나 라는 고민에 빠져 얼마나 슬펐을까. 그들이 말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있다. 

아마 많은 취준생이나 학생들이 자신이 생각한, 구상한 미래의 뭔가, 꿈이라 일컫는 미래의 형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많은 컨설턴트들을 찾아가지 않을까 한다.

절박한 심정이고 참 간절할 것이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신은 참 필요한 사람이고, 당신을 필요로 하는 그곳은 당신에게 가고 있는 중이니, 너무 많은 바람에 치이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여러분 마음에 있는 그 묵직한 것들은 세상의 유혹에 가볍게 치이지 않고 엄한곳으로 당신이 날아가지 않게 여러분을 잡아줄 좋은 닻(앵커)이되기도 한다는걸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내가 그 마음의 무게가 없었다면 진짜 소중한걸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공에 취해 허공을 떠다녔을 지 모른다. 결국엔 제자리로 돌아왔을 것이다. 마음에 약간의 무게감을 두길 바란다. 당신의 운명은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걸 늘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의 마음에 묵직한 닻을 달아준 그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그들이 항상 이야기 하던 그 앵커링을 나는 내 삶의 중심에 제대로 꽂은 것이다.

나는 그들의 걱정덕분에 너무나도 잘 지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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