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칭찬해주고 싶었던 순간.

 

 나는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면 참 할말이 많은 사람이다.

 

 특히 학창시절에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스스로 안쓰러워하기도 해서 그 성장이나 느낀점을 막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거 같다.

 

 하루는 대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려고 버스에 올라타 가장 좋아하는 맨 뒷자리에 앉아 음악을 틀어 놓고 생각에 잠겼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학창 시절이 생각이 났다.

 

 처음으로 중학교때 받았던 수학 점수 인 97점이 생각이 났고 나에게 그게 어떤의미였는지 스스로 떠올렸다.

 나에게 그때의 수학 97점은 감동 그 자체였다.

 

 시험이 뭔지 감이 없는 내가 뭔가를 제시간안에 아는걸 적어내는 걸 너무 힘들어 하던 내가, 다른 친구들은 공부를 해서 아는걸 막 적어 내는걸 그저 부러워 하고 애닳아하던 내가, 시험 공부하는게 너무 어려워서 내가 놀고싶어서 버틴다고 생각했던 내가 처음으로 받은 고단위 점수였다.

 

 나는 정말로 시험을 친다는게 두려웠다. 학생땐 꾸준히 공부하지 못하고 시험칠때만 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거라고 생각해서 공부잘하는 애들한테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구걸하듯 묻기도 했었다.

 그런 결핍이 갈증으로 쌓여서 지금까지의 나로 이끌었다고 생각해서 어른이 된 후 조금 진정이 되고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게 아니었다.

 그 결핍이나 점수에 대한 불만족이 처음으로 충족된 97점의 순간에 나는 많은 아이들에게 재수없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나는 항상 공부를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공부를 잘 하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거나 질문을 하거나 이해를 하려고 애쓰는 순간들이 많았다.

물론 그 모든건 내 뜻과 상관없이 진행되지 않았고 아무리 애써도 나보다 더 열심히하고 이해를 잘 하는 친구들에 비해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점수가 안나왔다는 수준이 80점 이런게아니라 정말 시험칠땐 거의 찍는게 대부분이었고 점수는 50점 60점이었다.

 잘 찍으면 70점 나왔던거 같다. 또 긴장은 얼마나 많이 하는지 시험치다가 다 찍어 버리고 화장실로 급하게 달려간것도 한두번이아니다.

 

 정말 말그대로 시험 수난시대다.

 

 그래서 나는 그 97점이 정말 뭔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너무 행복했고 마지막 하나 틀린 그거마저 배가 아파 속이 쓰렸다. 처음이었는데 백점을 받을 수 있는 그 기회가 날아가버린것에 스스로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모르는 친구들이 있다면 그냥 도와주고 싶었다. 이걸 내가 아는데 내가 이해했는데 너가 모르고 있었구나, 얼마나 속 앓이를 할까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좀 건방지게 어 그거 나 아는데 하고 접근했던게 "지 97점이라고 잘난척하네"라는 뒷 이야기를 나오게 만들었던 것이다.

 

 인간사라는 건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가 옳고 그르다고 설명할 수 없는 거 같다.

다만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언제나 점수는 안나오는 내가 잘난척을 하려고 해 그 친구들의 심기를 언짢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한번 맞은걸로 자랑 엄청나게 하는 아이로 ...

 나도 내가 그런 아이어서 엄청나게 많이 속상했다.

 그곳에서 '정도'와 '선'에 대해서 배웠던거 같다,

 

 또 한번은 학원에서 도형에 관련된 수학 공식을 외워 시험을 쳐서 어느정도까지 맞아야 집에 가는 과정을 겪었었다.

 

 원과 직사각/정사각 등등의 공식이었는데 대체 왜그렇게 안외워지는지

아무리 자리에 앉아있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머리에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를 적어내야한다는건 곤욕 그 자체였다.

 다 적을때까지, 그게 몇시라도 집에 가지말라고 하던 선생님이 지쳐서 집에가서 두장 써오는걸로 대신하자고 했다.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거절을 하고 끝까지 외워서 내일 다시 시험치겠다고 했다.

 

 가방을 챙기러 윗층을 올라가는데 내 분에 못이겨서 또 눈물이 났다.

 

 공부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던거 같다.

 

 그 두가지 기억이 생각나면서 그날 버스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돌면서 내가 바보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보면 요령을 피우는게 자존심이 상해서 항상 고생을 했지, 바보라서 못했던건 아니었던거 같다.

 그렇게 울면서 애닳이를 해도 결국엔 해야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리에 앉아 성적이 나오던 안나오던 펜을 쥐고 머리를 쥐던 나를 보며 참 애썼다. 고생 많았단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가장 칭찬해주고 싶은 순간은 그런 순간들이다.

 

 아무것도 몰라서 애쓰고 애닳아하며 살던 그런 순간들.

 

 학원에서 울면서 집에 간 그 날은 선생님들도 나를 안쓰럽게 봤었었다. 그러나 이주정도 지난 뒤에 선생님이 수학 문제를 풀어 내면서 이때 필요한 공식이 뭐냐고 했을때 그 위치에 걸맞는 공식을 말한 건 나 혼자 뿐이었고 그 때의 전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정말 존경하는 선생님이 었는데 그 선생님이 '칭찬'이라는걸 해주셨다. 단번에 외우고 잊는것 보다 이렇게 오래 기억되는게 중요하다고 나에게 칭찬을 했을때 어린 나는 그렇게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스스로 참 행복했다. 그래서 그 행복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싶었다. 기억은 안나지만 무조건 나라면 말하던가 기록하던가 했을거 같다 :-)

 

 97점 받았던 그 날도 그 다음 시험에도 내가 그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두려워 하긴 했지만, 나에게 포기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던 수학을 제일 잘하는 과목으로 만들어 준 순간이었다.

 

 나는 수학을 공부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는 나를 건강하게 한다는 사실과 방정식과 함수를 정말로 내가 잘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준 순간이었다.

 

 

 나는 모든 순간의 나를 사랑하지만 가장 칭찬해주고 싶은 순간은 학창시절이다.

 

 

 고생 참 많이 했었고 그때의 속상함은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표현이 안된다.

 그 감정은 나만 느끼는건 아니였다.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로 행복하고 마음이 공유가 되어서 또 다른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냥 그 속상함을 잘 이겨내고 어른으로 성장하게 도와줘서 십대의 나에게 참 감사하다.

 

 

 애타도 남들이 내 맘을 잘 이해못해준다고 속상해도 내 잘못이 먼저 있다고 생각하고 진정하려고 하고 실례 안되려고 애써줘서

아무것도 몰랐던 나에게 참 칭찬한다.

 

 고생 많았다.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타임머신이 있다면 너를 꼭 만나러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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