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뒤의 나를 떠올려보자.

 

3년뒤면 몇살일까 내가?

 

 아마 ,

2021년 3월일테고 나는 31살의 어른이 되어있을거 같다.

 

 30이 넘었다면서

이제는 10년전이 이십대라는 이야기를 빼먹지 않고 여전히 내 동네 친구들과 만나면 그런이야기를 할거같다.

 

 서로 일로서 자리를 잡아가며 틈틈이 만나는 순간에 우리는 루미큐브를 하면서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을거 같다.

 

 여전히 크게 변한거 없이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 가며 차근히 차근히 그렇게 하루들을 살아가고 있을거같다.

 

 책을 쓰고 싶어했던 친구와 나는 책이 나왔을테고 원하는 게 많은 나는 그걸 이루어 내며 시간들을 보내며 여전히 책을 읽고 운동과 언어와 연애를 하며 그런 시간들을 보낼거 같다.

 

 몇 달전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 거리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때 바라던 스물 다섯의 어른은 내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스물일곱의 어른이 되었고 지금 가진 능력들은 이정도로 있고 책이 그렇게 싫었는데 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성장하는 과정에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넘치는 결핍이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서른엔 어떠어떠한 모습의 나를 상상하고 있는 걸 보면서

그냥 하루하루 쌓이는 내가 서른이 되는거지 어느날 그게 뿅하게 되는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는구나 -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오늘 내가 하는 영어가 서른에 또 어떤 도움을 줄것이고 오늘 내가 하는 일이 읽는 책이 나에게 묻혀져 표현되는거지 뿅하는 마술은 없구나 알게되었다.

 

서른의 나와 오늘의 나는 완전 다른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는 바보짓을 하고 있었다.

 

조금 머쓱하면서 아 오늘 하루를 나는 잘 살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삼년뒤 2021년의 나라면 아마 여전히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친구들과 수다떠는걸 굉장히 좋아하면서 사람사이의 관계를 고민하고 성장하고 생각하는 시간들을 보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나로 있겠지.

 참 다행이다

 

 어느 순간에도 내가 내가 아닌 순간은 싫다.

 내가 원하는 사명을 잊지말고 그 행복과 마음을 모두에게 지금처럼 나눠주는 인간으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꿈모닝 책쓰기 토요일 주제:내가 하고 있는 일과 꿈의 연관성에 대하여

 

 다른 분들은 이 주제를 받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자연스럽게 문자 그대로를 떠올렸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미라클일과 내 꿈 예술-불꽃의 연관관계.

 현재 나는 미라클팩토리에서 근무를 하고있다. 그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강의를 하거나 서브를 하거나 하는 일들이다.

우리는 책이라는 매개체로 모인 사람들이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작가로 만들겠다는 꿈을 위해 힘을 합치고 있다.

 

 책과 꿈의 콜라보는 멋진 감동을 전해 준다. 사람들을 살고 싶게 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일이 가진 예술이 그런거다.

사람들을 자기자신으로 살게 하는 일, 이게 바로 미라클 팩토리의 일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내 꿈 불꽃연출가는 어떤 일일까? 불꽃연출을 디자인하고 현장에서 다양한 변수에 따라 조율도 하며 한 팀이 힘을 합쳐서 쇼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연출은 여느 예술가들의 예술과 다르지 않다.

 내가 느낀 예술가의 예술이란 자신의 삶에서 느낀 희노애락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표현하는 일인데, 그것과 전혀 다른점이 없다. 불꽃연출가는 정말 예술가이다.

 그리고 내가 만난 불꽃이 나에게 준 '행복과 설렘'을 타인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일이다.

 불꽃연출가가 왜 하고싶은지 단어를 연관하여 떠올릴때 딱 하나 생각났던거 같다. "행복을 선사하는 쩌는 일"

 

 

 예술과 책은 떼려야 뗄수없는 관계로 맞물려있다.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이 본것, 느낀것, 들은것에 온 정신을 집중하여 그걸 표현해 낸다.

작가도 그런 예술가중 하나이다. 그런데, 그 어떤 예술가들도 자연의 모든 것과 책을 경시하지 않았다.

책을 읽지 않고 서 초인이 아닌 내가 사색을 스스로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 책을 가지고 현재 일을 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내가 굉장히 든든하다.

자랑스러움 보다도 현재도 미래도 사용할 자산을 축척하고 사용하는 기분이라 정말로 든든하다.

 또한 이 두 꿈과 일의 연관성은 도드라 지진 않지만 아래 혹은 뒤에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이건 내가 바라는 삶과 일치하기도 해서 꿈과 일과 내 삶이 하나로 서로 연관되어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어쩜 이렇게 내가 바라는 나는 내 삶의 곳곳에 묻어 나오는지 신기하다. 도드라 지지 않아도 내 손길이 묻었다는걸 티나게 알리지 않아도 그냥 나는 나의 정성이 퍼지고 커져서 누군가의 삶에 뜨거운 사랑으로 남기만 해도 정말로 행복하다. 그걸 알게 해준게 책이고 미라클팩토리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대로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내 정신과 사랑을 이미 뿌리뿌리에 심어 두고 있다. 그건 진짜 사실이다.

 

 

 불꽃과 책이 매개체인 미라클팩토리, 이 두가지의 교집합은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는 일이다.

인간은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의 모든것을 보기 마련이지만, 때로는 한 사건의 발상으로 그 관점을 바꾸는 일도 발생하는데 나의 인생에선 그 사건을 담당하는 것이 불꽃과 강연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내면과 이야기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본능적으로 가슴이 뛰는 일을 알게도 해주는 멋진 일들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만가지의 일이 다 그렇겠지만 누가 빨리 알아채고 그렇게 살아가느냐의 차이라 생각한다.

 며칠 전 친구의 친구가 소속된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초대 받아 간적이 있다. 그때 나는 머리로만 이해하던 모든 직업군들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얼마나 예술적으로 만들수 있는지는 마인드의 차이라는 생각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순간이 진짜 제대로였다.

 바이올린 현을 끊어질 것 같은 힘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팔과 어깨의 근육을 사용하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그동안 클래식이 지루하다 생각한게 죄스러웠다. 미친 생각이었다. 그 연주가 마친 뒤 1ST바이올린 의 사람들이 이마에 땀을 닦아 내는 모습을 보며 내가 불꽃놀이현장에서 일하는 동안 집중하는 시간들이 떠올랐다.그리고 미라클에서 네명이 모여 회의를 하고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하기 위해 몇시간이고 앉아서 자료를 만드는 모습들이 겹쳐졌다. 어른이 되었나 보다 이제 그런 혼신의 힘이 마음으로 이해되는거 보면.

 세상의 모든일이 다 귀하다. 그 귀한 일들은 타인에 의해서 규정되는게 아니라 일의 포지션에 있는 자신에 의해서 규정된다.

 

 

 존 고든이 지은 에너지 버스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 대통령인 린든 존슨이 미 항공우주국을 방문했을때의 일화이다.

지저분해진 바닥을 닦고있는 청소부를 보게 되었는데 그 청소부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라도 하는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열심히 바닥을 닦고 있었다. 이에 감동받은 대통령이 '여태껏 자신이 본 청소부중에서 가장 훌륭한 청소부' 라고 치하했다. 그러나 그 청소부는 이렇게 답했다.

 

 "각하, 저는 일개 청소부가 아닙니다. 저는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어요."

 

 

 이 책을 만나서 이 글을 읽기전엔 고신대복음병원에서 사무보조의 일을 10개월 하던 중이었고 그때 나는 사회의 편견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의 편견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편견이 싫어서 병원을 둘러보며 내가 만약 이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병원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했었다. 결론적으로 병원 운영이 되지 않아 환자들의 건강이 회복되지 않는 나비효과가 생각이 났다.

 우연히 지금은 근무하지만 그때는 회원이던 시절 이 책을 만나 이 문구를 보고 나는 이 마인드로 살겠다는 평생의 결심을 했다.

 그때 부터 내가 손닿이는 그 모든일들이 하찮게 느껴지지 않았다.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해줬고 그 생각은 타인에게 감동이나 엄청난 에너지를 뿜는 사람으로 비추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불꽃과 강연이 나에게 그런 연관성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꿈 목록들은 다 이 인간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한 예술들이 연관되어있다. 누군가 나에게 너는 진짜 예술가가 아니야 라고 할 지언정, 이제는 그게 크게 신경쓰이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당신의 가슴을 울게 만들고, 웃게 만들고, 슬프게 만들고, 설레게도 만들거니까.

 

 나는 예술가라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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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칭찬해주고 싶었던 순간.

 

 나는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면 참 할말이 많은 사람이다.

 

 특히 학창시절에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스스로 안쓰러워하기도 해서 그 성장이나 느낀점을 막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거 같다.

 

 하루는 대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려고 버스에 올라타 가장 좋아하는 맨 뒷자리에 앉아 음악을 틀어 놓고 생각에 잠겼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학창 시절이 생각이 났다.

 

 처음으로 중학교때 받았던 수학 점수 인 97점이 생각이 났고 나에게 그게 어떤의미였는지 스스로 떠올렸다.

 나에게 그때의 수학 97점은 감동 그 자체였다.

 

 시험이 뭔지 감이 없는 내가 뭔가를 제시간안에 아는걸 적어내는 걸 너무 힘들어 하던 내가, 다른 친구들은 공부를 해서 아는걸 막 적어 내는걸 그저 부러워 하고 애닳아하던 내가, 시험 공부하는게 너무 어려워서 내가 놀고싶어서 버틴다고 생각했던 내가 처음으로 받은 고단위 점수였다.

 

 나는 정말로 시험을 친다는게 두려웠다. 학생땐 꾸준히 공부하지 못하고 시험칠때만 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거라고 생각해서 공부잘하는 애들한테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구걸하듯 묻기도 했었다.

 그런 결핍이 갈증으로 쌓여서 지금까지의 나로 이끌었다고 생각해서 어른이 된 후 조금 진정이 되고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게 아니었다.

 그 결핍이나 점수에 대한 불만족이 처음으로 충족된 97점의 순간에 나는 많은 아이들에게 재수없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나는 항상 공부를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공부를 잘 하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거나 질문을 하거나 이해를 하려고 애쓰는 순간들이 많았다.

물론 그 모든건 내 뜻과 상관없이 진행되지 않았고 아무리 애써도 나보다 더 열심히하고 이해를 잘 하는 친구들에 비해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점수가 안나왔다는 수준이 80점 이런게아니라 정말 시험칠땐 거의 찍는게 대부분이었고 점수는 50점 60점이었다.

 잘 찍으면 70점 나왔던거 같다. 또 긴장은 얼마나 많이 하는지 시험치다가 다 찍어 버리고 화장실로 급하게 달려간것도 한두번이아니다.

 

 정말 말그대로 시험 수난시대다.

 

 그래서 나는 그 97점이 정말 뭔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너무 행복했고 마지막 하나 틀린 그거마저 배가 아파 속이 쓰렸다. 처음이었는데 백점을 받을 수 있는 그 기회가 날아가버린것에 스스로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모르는 친구들이 있다면 그냥 도와주고 싶었다. 이걸 내가 아는데 내가 이해했는데 너가 모르고 있었구나, 얼마나 속 앓이를 할까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좀 건방지게 어 그거 나 아는데 하고 접근했던게 "지 97점이라고 잘난척하네"라는 뒷 이야기를 나오게 만들었던 것이다.

 

 인간사라는 건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가 옳고 그르다고 설명할 수 없는 거 같다.

다만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언제나 점수는 안나오는 내가 잘난척을 하려고 해 그 친구들의 심기를 언짢게 만들었지 않았을까.

한번 맞은걸로 자랑 엄청나게 하는 아이로 ...

 나도 내가 그런 아이어서 엄청나게 많이 속상했다.

 그곳에서 '정도'와 '선'에 대해서 배웠던거 같다,

 

 또 한번은 학원에서 도형에 관련된 수학 공식을 외워 시험을 쳐서 어느정도까지 맞아야 집에 가는 과정을 겪었었다.

 

 원과 직사각/정사각 등등의 공식이었는데 대체 왜그렇게 안외워지는지

아무리 자리에 앉아있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머리에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를 적어내야한다는건 곤욕 그 자체였다.

 다 적을때까지, 그게 몇시라도 집에 가지말라고 하던 선생님이 지쳐서 집에가서 두장 써오는걸로 대신하자고 했다.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거절을 하고 끝까지 외워서 내일 다시 시험치겠다고 했다.

 

 가방을 챙기러 윗층을 올라가는데 내 분에 못이겨서 또 눈물이 났다.

 

 공부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던거 같다.

 

 그 두가지 기억이 생각나면서 그날 버스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돌면서 내가 바보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보면 요령을 피우는게 자존심이 상해서 항상 고생을 했지, 바보라서 못했던건 아니었던거 같다.

 그렇게 울면서 애닳이를 해도 결국엔 해야하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리에 앉아 성적이 나오던 안나오던 펜을 쥐고 머리를 쥐던 나를 보며 참 애썼다. 고생 많았단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가장 칭찬해주고 싶은 순간은 그런 순간들이다.

 

 아무것도 몰라서 애쓰고 애닳아하며 살던 그런 순간들.

 

 학원에서 울면서 집에 간 그 날은 선생님들도 나를 안쓰럽게 봤었었다. 그러나 이주정도 지난 뒤에 선생님이 수학 문제를 풀어 내면서 이때 필요한 공식이 뭐냐고 했을때 그 위치에 걸맞는 공식을 말한 건 나 혼자 뿐이었고 그 때의 전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정말 존경하는 선생님이 었는데 그 선생님이 '칭찬'이라는걸 해주셨다. 단번에 외우고 잊는것 보다 이렇게 오래 기억되는게 중요하다고 나에게 칭찬을 했을때 어린 나는 그렇게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스스로 참 행복했다. 그래서 그 행복한 감정을 말로 표현하고 싶었다. 기억은 안나지만 무조건 나라면 말하던가 기록하던가 했을거 같다 :-)

 

 97점 받았던 그 날도 그 다음 시험에도 내가 그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두려워 하긴 했지만, 나에게 포기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던 수학을 제일 잘하는 과목으로 만들어 준 순간이었다.

 

 나는 수학을 공부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는 나를 건강하게 한다는 사실과 방정식과 함수를 정말로 내가 잘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해준 순간이었다.

 

 

 나는 모든 순간의 나를 사랑하지만 가장 칭찬해주고 싶은 순간은 학창시절이다.

 

 

 고생 참 많이 했었고 그때의 속상함은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표현이 안된다.

 그 감정은 나만 느끼는건 아니였다.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로 행복하고 마음이 공유가 되어서 또 다른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냥 그 속상함을 잘 이겨내고 어른으로 성장하게 도와줘서 십대의 나에게 참 감사하다.

 

 

 애타도 남들이 내 맘을 잘 이해못해준다고 속상해도 내 잘못이 먼저 있다고 생각하고 진정하려고 하고 실례 안되려고 애써줘서

아무것도 몰랐던 나에게 참 칭찬한다.

 

 고생 많았다.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타임머신이 있다면 너를 꼭 만나러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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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우연히 페이스북으로 한 입시 강사님의 강의를 보게되었다.

'자신이 왜 항상 뒤쳐지는지 알려주는 영상'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서울대 출신의 강사님이 자신이 중학교에서 꼴찌하다가 고등학교 가서 역전한 선배로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이었다.

 

 대학 졸업한지가 이미 2년이 가까워 지는 나에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가도 요즘은 입시보다는 성공마인드가 궁금해서 그런 영상이 있으면 종종 보곤하는데 거기서 나는 나의 많은 것을 되돌아 본거같다.

 서울대 가는 비법이 뭘까? 비법 공개 전에 그 강사님은 절대로 고등학교 시절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누누히 강조 했다.

그래서 무용담 좀 알려주세요.라는 이야기에 자신은 그때 생각을 하면 정신병이 걸릴거 같다고 상상도하기 싫다고 했다. 

 장담컨데 자신보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사람은 없을거라는 이야기를 하며 듣는 모든 사람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대체 얼마나 했길래?? 비법이 뭐길래?? 하지만, 공신같은 사람들이 누누히 하는 그런 이야기겠지?하고 한편으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간단했다. 


 "야자 시간 4시간 수면은 하루 무조건 7시간 반"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살짝 인상을 찡그리게 되었다.

현장에 잇던 친구들도 나와 같은 반응이었겠지? 잠시 끌까 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 강사님의 강력하고 리드미컬한 화법에 차마 끌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끄지 않은것을 지금에서야 매우 잘한일이라고 생각한다.


 강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3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그렇게 공부했어.

3년동안 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살았었다고 재수 삼수까지 하면서 똑같이 살았다고 착각하며 살아온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감동도 없었고 시시함도 느끼지 못했고 짜증도 놀람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지해질 수록 매일 그렇게 공부했다는게 어떤건지 인지되기 시작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오차없이 똑같은 삶.

 학기중엔 야자 4시간 집가서 잠자는 7시간 반

방학땐 9시부터 7시까지 그리고 집에가서 또 7시간 반 수면

 친구?, 없는 존재이고 빨간날?,없는 날인 그 똑같은 삶을 3년을 살았단다.


 나의 재주 삼수를 돌이켜봤을때, 똑같이 나도 모르게 힘들어서 눈물이 주룩 났고 알 수 없는 외로움과 곰허함에 미쳐버리는 짓을 했는데 왜 우리는 다른 결과를 가진 것일까.

 애초에, 똑같은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걸 그리 늦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나랑 완전히 달랐다. 나는 [이정도 했으면 좀 쉬자]를 맹신하는 학생이었고, 그 강사님은 "안해" 라고 가방을 싸지만 여기서 나가버리면 [내일부터 다시는 이자리로 돌아오지 않을거 같아 자리에 앉는] 학생이었다.

 우리는 닮은 구석이라곤 학생이었다는 점 뿐이다.


 아, 정말로 후회없이 살았다고 생각했다. 후회해도 그 당시에 내가 느낀 마음의 짐은 더이상 떠올리기 싫을 만큼 고통스러웠고 그걸 싸워 이겨내기 위해 흘려 보낸 눈물을 안아 있는 그대로의 내가 그려낼 삶을 응원하려고 했다. 모든걸 안아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피어 올랐다.

 후회가 피어올랐다. 솔직히 나도 안다. 엉덩이를 붙여서 매일 똑같은 하루들을 보내려고 내가 애썼다는걸, 그런데 정신병이 올게 두려워서 정말 조금이라도 더 있다간 소리라도 지르면서 책상을 쾅쾅 처버릴거 같아서 문밖으로 나갔다는걸 나는 잘 안다. 그런데도 뭔가 아쉽다고 느꼈다.


 입시시절의 아쉬움은 짧았다.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의 나는 어떤가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여전히 나는 [지속]에 있어 얼마나 약한 사람인가를 내가 묻고 있었던 것이다.

 

 원하는 능력을 위해 매일 똑같은 시간을 똑같은 삶의 순으로 살아가 얻어내 봤는가 그렇게 잘 지속하고 있는가.

그렇게 작심삼일이란 단어를 싫어 했으면서 여전히 [지속]에 검은 때가 잔뜩끼어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는 나를 만나니 할말이 없었다.

그리고 프리라이팅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이 글을 쓰고 있는거같다.


 정말 재밌는건 그와 동시에 기쁘기도 했다.

왜냐면 나는 나아갈 방향을 찾았기 때문이다. 인생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스트레스받고 나에게 너 잘 지내고 있니라는 성찰의 시간을 보내게 했지만 [지속]에 대한 이해로 내가 개선해야할 방향을 알게 되기도 했다.

 

 3p바인더를 활용하면 주간게획표에 하이라이트를 비추며 가는 자동차 하나가 있다.

 전체를 내다보고 바로 앞에있는 도로를 보며 차를 몰아라는 의미이다.

 

 산악인 엄홍길씨도 고산을 오를 때 첫날에만 목표 꼭대기를 올려다 보고 그 뒤부터는 발앞의 거리만 보면서 전진한다고 한다.

그런게 무리없이 끝까지 정상을 정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 두 이야기는 내 주변에 항상 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바로 생각날 만큼 내게 인상깊고 오래새겨두는 말들이다.

그런데도 그 강사님으로 부터 나온 1000일의 지속을 들었을때 두가지 이야기가 다시금 새롭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지속]은 정말 나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그 짧은 강의가 내가 어떤 행위를 지속해야할지 반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 나한테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한다고 시작하는 일들은 그냥 그 시간에 똑같이 시작하라. 완성이 되기 전 까지]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

 시작에 관해서 글을 쓰는 주제를 받았을 때 많은 고민속에 연필을 쥔 내모습을 보며 생각난 소리였다.

 

 '시작-'

 원장 선생님이 교탁에 서서 A4종이 묶음을 탕탕- 두번 치고 종이를 나눠 준 뒤 외친 말이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온 친구 하나가 책상위로 딱딱딱딱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간 소리를 내며 열심히 단어를 내리 적었다.

빠르고 정확했다. 원장 선생님은 "그래 ! 이거야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소리-!!"라며 소리를 지르셨다.

그건 분명 지르는 소리였다.

 

 시험을 치르는 나에게 '시작'은 긴장의 대상이었는데 원장선생님에겐 어떤 것이었을까?

 

 시작을 생각하며 어제 책쓰기 시간에 20분을 거의 다 쓴거같다.

20분 동안 글을 쓰는 시간이었는데 생각을 하느라 시간을 거의 써버려서 글을 거의 적어내지 못한거 같다.

 처음 느꼈다. 시작에 대해서 생각을 별로 크게 해본적이 없다는 걸. 시작이 주는 이미지/느낌은 내게 너무 당연했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연필을 절대 서있게 하진 말자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에 대해서 일단 써나갔다.

 첫 문장이 '시작을 순간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소개하고싶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개하고 싶은 대상은 온전히 '나'였다.

나는 나에게 '네가 가진 시작의 이미지를 다르게 봐보자, 이렇게 까지 무덤덤하게 시작을 느끼는지 몰랐어'라고 속으로 말을 걸었던거 같다.

 

 그렇게 '시작'에 대해서 파고 들다 보니 아무래도 감정이 빠지지 않는게 재밌게 느껴졌다.

 

 시작은 시작 '전'이라는 순간이 주는 '설렘'이나 '긴장감'과는 전혀 닮지 않았고, 시작 '후'에 느끼는 '기대했던 것과의 차이' 나 '감동'은 시작인 순간과는 엄연히 다른 형태였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시작 '전',시작 그리고 시작 '후' 이 세가지로 시간을 나눈다. 그리고 그 세가지의 감정이 하나의 이야기가 됐을 때 이를 '경험' 혹은 '경험의 느낀점'이라고 부르는거 같다. 그 곳에 우리가 말하는 수만가지의 '감정'단어가 들어간다.

 시작은 '순간'이 아니라 감정주머니라는 걸 이때 느꼈다. 사람들과 모여 앉아 시작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때 나포함 대부분이 그때의 감정이나 경험을 꺼내는걸 보면 말이다.  

  

 설렘에서 행복으로 가기도 하고, 행복에서 좌절, 좌절에서 무던함으로 바뀌기도 하는 모습을 보자니 시작은 행동을 대신하는 단어가 아니라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세상 모든 것은 하나의 뭔가로 정의내리기 어렵다.많은 연결 고리들이 얽히고 설켜있어서 이 입장을 고수하자니 저 입장이 떠오른다.

 그래도 시작 전 감정주머니에서 자주 만나는 '부담'을 있는 그대로 이뻐해주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종종 시작 전과 시작, 일련의 과정을 두려워 한다.

막상 진행되면 걱정은 순탄하게 잘 흘러갔고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그것들은 나의 시간을 먹고 자라 경험으로 나에게 왔다.

 경험 데이터들이 쌓여 이제는 두려워도 시작 이후의 재미를 생각하는 경지에 올랐다. 두려움 이후의 재미를 찾는 마인드가 내 몸 곳곳에 박히게 된것이다.

그래서 점점 내 스스로가 성공자 반열에 올랐다고 착각했다.


그런데 아직 나는 두려움을 두려워 하는 나를 있는 자체로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어떤 감정이든 그 자체를 이뻐해 보자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착각은 나를 애쓰게 만들었고 마음 속 내면의 떨림을 억지로 누르고 극복하게 만들었다. 


 EBS에서 출간된 기억력의 비밀이라는 책에 보면 뇌에 대한 연구 내용이 담겨있다.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 감정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라고 한다.

 두려움을 느끼거나 위험을 감지하는건 야생에서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했다. 그게 아주 옛날부터 사람 몸에 체화됐고 이제는 필수불가결이라는 것이다.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한 감정이기에 억지로 누른다는 것도 과할 때는 문제가 된다. 그리고 끓는 냄비를 억지로 누르면 폭팔하는 것과 같다.

프레임을 부시거나 바꿈으로서 발상의 전환도 가능하지만, 그 자체를 사랑해 보는건 어떨까.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억지로 뭔가를 이뻐하는 것 보다 시작의 모든 순간에 나라는 존재가 늘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그저 소중하고 사랑스럽다는 걸 받아들인다면 이 세상을 떠나는 그 날, 우리는 어떤 것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시작의 모든 순간은 감정주머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감정들은 모든 순간에 사건들과 함께 버무려져서 이미지와 추억으로 내 안에 남는다.

 내 안에 남은 것들이 쌓여 나와 함께 나이 들어 가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작에 다양한 감정들이 섞여있을까?

 그리고 이 글을 함께 나누며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엔 어떤 경험의 순간과 그 감정이 들어 있을까?

 

 하나하나 같이 보지 못해 아쉽지만 상상만으로도 행복하고 공감된다.

 참 아름다운거같다.

 

-꿈모닝 책쓰기 2주차 토요일 주제 : 시작에 관하여-

이번 설날을 맞이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월요일 아침 미라클팩토리로 출근하기 위해 버스에 올라타있었다.

설 전까지 나는 매일 나는 성공자다 방에 잠재의식에 내 꿈을 주입하는 문장을 외치고 녹음해서 올리는 작업을 했는데 설동안은 그 즐거운 일이 중단이 됐다.

이유가 뭘까를 지금 버스안에서 고민하다가 하나의 느낌을 받았다.

​ 연휴엔 모든 일상이 멈춰도 괜찮은 날

어릴 때 부터 나에게 연휴란 이런 느낌이었던거 같다.
그래서 모든 일 처럼 느껴지건 것들은 중단하고 연휴 그니까 빨간날엔 그냥 아무일도 하지 않고 쉬었었다. 빨간 날엔 늘상 가던 곳을 멈춘다는 걸 배운 초등학교 시절 부터,

이번 설연휴도 그랬다. "쉴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런마음이 스믈 스믈 피어올랐다. 이런 마음이 그냥 드는것과 나를 지배해버리는 건 완전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지금 내가 느끼는 거 처럼.

-나는 빨간날에 쉬고 나면 그 이후에는 알게 모르게 후회하고 있다.-

 후회하는 내가 싫어 그 출근 버스에서 음악을 내려 두고 한참을 생각한거 같다.
쉬어서 만족스러워, 정말 잘 쉬었어 가 아니라​ 아, 너무 나태했나? 조금만 신경써서 해야할것은 할 걸이라는 드는 나 자신을 매년 발견한다는 것도 코메디고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쉼(휴식)은 반드시 삶에서 필요하다. 그런데 그 쉼 이후에 후회를 느낀다면 그건 쉼이 아니라 나의 나태함의 반증아닐까?

내가 그게 싫어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선적으로 어떤게 문제인지 상세히 들여다 보았다. 책읽기, 운동, 잠재의식 외치기, 영어등은 내가 평소에 하고 있는 것들인데 이게 참 묘한게 평소에 하던걸 매일 같이 이어 나가지 못하면 휴식기간이 꽤 많아지고 나중엔 아예 안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런 류의 장기 프로젝트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하는게 포인트 인데 우선적으로 빨간날이 되버리면 아예 다 멈춰버린다. 

 이 프로젝트의 포인트는 꾸준히에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나로선 연휴가 정말 사실 휴가 처럼 느껴져서 모든걸 중단하고 아예 쉬어버리는게 늘상이었지만, 쉬고나서 막상 행복하게 잘- 쉬었다가 되지 못한다는게 가장 큰 문제이다. 이럴거 같으면 차라리 아예 꾸준히 그냥 쭉 해버리는게 상책이다.

 이미 벌어진 일들을 수습하려 하면 스트레스만 더 받는다. 나는 나의 어제보단 나은 인간이 되려면 수습이 아니라 해결하고 발전해야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해결 방안에 대해서 고민하고 실행하는데 이 글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연휴에 대해 내가 가진 정의를 확인해 봤다.

나의 연휴[연휴] : 빨간 날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가 모두 쉬며 명절을 즐기는 날.+공식적으로 쉬어도 되는 날 +48시간쯤 되는 것 처럼 느껴지는 날

이런 이미지와 정의를 가지고 있었다. 어쩐지, 이것만 봐도 빨간날만 되면 늘어지는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마음이 이미 이런 상태인데 뭔가를 꾸준히 하지 않는 나를 탓하기만 한다니, 이게 얼마나 패배감을 조성하는 큰 역할을 하는지 여태 몰랐다는게 너무 충격이다.


 정말 재밌는건 내가 가지고 있는 정의 -이미지는 내 마음을 반영하는 거울이고 그 마음은 잠재의식 과 현재의식 모든것을 아우룬다.

그렇게 나에게서 드러나는 마인드는 내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하나가 되고 우리는 한 몸을 공유하며 한 존재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왜 마인드가 중요한지 또 알 수 있다.

그래서 뭔가를 바꾸려 한다면 정의/이미지 부터 바꾸는게 우선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연휴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변명을 해도 누구하나 뭐라할 사람 없지만, 혹시나 나처럼 연휴 외에도 꾸준히 하고자 하는 것에 몇가지 어려움을 느낀다면 그게 뭔지 파악해봐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그런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나는 지금 함께 변화해보자고 권하고싶다.

 우리가 가진 연휴/빨간날의 정의부터 파악해보자.
 우리는 연휴에 대한 정의부터가 문제인거 아닐까?
여기서 정의란 마인드까지 포함하는 개념인데 위에서 내가 내린 정의에서 아주 포인트가 되는 문장이 있다.
-시간이 48시간 처럼 느껴진다는 것.
하루 24시간은 언제라도 동일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변함없는데 왜 명절만 되면 무슨 행사만 되면 그렇게 시간이 많게 느껴지는지 :-)
나는 안그래도 미룰수 있으면 끝까지 미루는 사람인데 이런 내 행동에 불을 지피는 마인드 인것!

 파악이 됐다면 이제 다시 정의를 내릴것.

 무슨의미냐면 그 동안 나도 알게 모르게 가져왔던 내 삶의 각종 정의는 나의 삶을 좌지우지해왔다. 정의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다듬어서 활용한다면 정말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뜻이다.

 앞에서 강조하는 것 처럼 정의는 마인드에 많은 부분 지분을 가지고 있다. 내가 어떤 정의를 가지고 있었고 그걸 어떻게 바꾸냐는 것은 많은 발전을 가져온다.


 우선 내가 원하는 걸 파악해 보자: 쉬는 날을 맞이 할때, 정말 몸이 쉬고 싶을땐 쉬지만 그닥 큰 일이 있지 않다면, 지금 내가 공부 하는 것들과 운동만큼은 재미를 느껴서 매일 하면 하는 것.


 나의 새로운 연휴:요즘 같은 바쁜 때에 가족들과 함께 만나 밥먹을 수 있는 국가 지정일, 나에게도 일하던 시간 대신에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 그 이후에는 큰 변화가 없어서 하루 한시간 정도 나스스로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존재 하는 날.


 이런 정의를 내린 후 바로 적용이 될거 같지만, 관념이라는 게 그리 한번에 뚝딱하고 없어지지 않는다. 이 새로운 정의는 항상 어딘가 적어두고 보면서 인지해야한다. 또, 무슨 연휴하나를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할테니지만 이렇게 안하면 또 후회하고 패배자 마인드만 꾸준히 저축하는 것이다.

 선택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


 사실 이 정도 쯤이면 연휴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이런식으로 적용 시킬 수 있겠단 아이디어들이 많이 떠올랐을거란 생각이 든다.


맞다!


바로 그거다.

 

 하다못해 지금은 연휴에 대한 마음가짐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구구절절 풀어놨지만, 영어공부를 연휴가 아닌 날에도 꾸준히 하지못하는 날 직시한다면 영어를 반대로 이렇게 접근하면 된다.


 영어: 해야하는거 가끔재밌는거 좀 실력이 오르면 진짜 재밌을거 같은거, 매일 하고 싶은데 말하는게 은근 귀찮은거, 속에서 뭔가 궁금증이 많이 피어오르는것, 그런데 꾸준히 하기 어려운것, 꾸준히 해야하는 것.


 내가 가지고 있는 영어의 정의다.

 

이쯤에서 내가 원하는 영어를 나열해보자. [꾸준히 해서 재미를 느끼고 잘 하는 것! 진짜 말이 막 막 나왔으면 좋겠다.]


 새로운 영어 정의가 필요하다 "나에게 영어란, 완전 재밌고 진짜 사랑스러운 제 2모국어, 한국어처럼 유창하고 색다른 문화의 의사표현을 하는데 있어 매력적인 언어, 또한 역발상이지만 라틴어의 접근을 가볍게 덜어준 언어, 전 세계인을 만나는게 재밌는 내게 그들을 친구로 만들어 주는 소통매개체."


 이 정의를 나의 영어노트에 매일 적어 두고 볼 것이다. 

-지금 그 작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 :-)

 

 이걸 꾸준히 본다면 영어를 하는데 있어서 느끼는 부담이 크게 줄어 들고 마인드가 바뀌니 성공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나를 가로막는건 나다. 

그런데 내가 못나서 나를 가로막는게 아니다. 나는 항상 이 부분에 있어서 치열하게 나 자신과 싸우고있다. "내가 잘못해서, 내가 능력이 이것밖에 안되는 인간이라서 그런건가" 라는 고민을 수없이 해왔다.

 그런데 그렇게 바닥까지 생각이 떨어지고 난 후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반전이 일어난다. 

 "아니, 내가 뭘 잘못해" 

 

 살고 싶다는 내 욕망이 바닥까지 떨어진 나를 폭팔 시키는 것이다.


 그때 깨달은게 바로 이거다. 

 나를 가로막는 건 나다. 그런데 그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여러 매체/ 환경/ 교육으로 부터 만들어진 나인것이다.

묶은 때가 껴있는 나인것이다. 그 나는 나를 가로막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의 전체이기도 하다.

 그걸 부정할 필요도 없고 나쁘다고 벗겨내려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받아들이고 더 나은 내일의 나를 위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시선만 바꿔 주면 되는것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모든것이 변할 것이다.

 

 그 변화의 시작은 내가 힘들어 하는것/ 고민하는 것의 나 자신이 내리는 정의에서 부터이다.


 우리는 모두가 뭐든지 할 수 있다.

 


몇 년 전 대한민국 올해 키워드 중 이런 단어가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결정장애'


사전적의미:

[결정장애] 일정한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데 그 정도가 심한 것.


언제 이 단어가 등장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어느순간부터 우리에게 깊게 뿌리 박힌 단어가 되었다.

언어는 한나라의 문화를 드러낸다는 걸 여과없이 보여주는 사례같다.

 이 단어는 우리내 삶 곳곳으로 스며 들어와 이 현상을 설명할 대체 단어 따위는 없게 만들었다.


 요즘도 간간히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한창 유행어처럼 붐이 일었던 그 때 만큼 이 단어의 사용 빈도는 높지않다.

다만, 아직도 우리 삶에 남아있다.

남에게 이게 좋을까? 저게 더 좋을까?를 묻는, [고민]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아직 결정을 고민한다. 

 어떤 선택이 더 좋을지/ 그나마 덜 안좋을지 등등의 실패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 


 나 역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때가 종종있다.

예를 들면 이것도 맛있겠고 저것도 맛있겠고 아 - 나는 어느 하나 골라 내지 못해서 같이 먹기로 한 사람에게 너는 뭐가 먹고 싶어? 라고 대충 책임을 전가해 버리는 경우말이다.

 정말로 자주 있는 일인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결정을 쉬이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에 대한 고민을 무지하게 한다.

한 참을 고민한 끝내 내가 지금 어렴풋이 잡아가고 있는 이 현상의 문제는 바로 , 완벽을 추구하는 마음 이다.

 재밌는건 이 완벽을 추구 하는 마음에는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다는 것이다.

 마인드 맵으로 그리고 싶은 마음인데 몇가지 추려보자면, -실패하기 싫음(두려움) -이왕이면 최고의 선택 -후회하기 싫음등이 있는데 이 모든게 결국은 완벽을 추구하기 때문인거 같다.


 마음적으로 후회하지 않기 위한 완벽,

자라오면서 다양한 후회와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다 보니, 이왕이면 다양한 사람들의 후기를 조합해서 실패 확률을 줄이는게 가성비가 높기 때문.

이런 문제는 좀 더 심오하게 파고 들면 사회현상까지도 짚어 낼 수 있다는 점이 참 재밌다. 

 시간대비 완벽한 선택을 한다는건 이왕쓰는 시간이며 이왕쓰는 돈이라는 사람들의 보상심리가 들어가있다. 쓴만큼 최고의 보상을 받고 싶은것이다.

근데 투자대비 효율이 나지 않으면 그 씁쓸한 기분이 후회 - 실망 - 분노로 까지 번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를 나무라는게 아니라 순리같다. 아무래도 이 사회에선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인간의 삶을 빼놓을 순 없으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정말 다양한 힐러들이 다양한 언어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중 몇가지가 고민하는 것 보다 직접 해보길 권한다 던가, 너가 싫다고 한 영화는 나에게 최고의 명작이였고 다른이가 맛이 없다고 한 그 음식은 나에게 퍽이나 잘 맞았다는 글을 서술하거나, 실패해도 괜찮아 - 경험으로 올거야 이다. 세상은 참 여러가지가 얽히고 섥혀있는 곳이다.

 

 이 결정장애 덕분에 '후기'의 인기가 최고로 올랐고 다양한 경제활동을 만들어 내고 있는 진풍경도 펼쳐진다. 그런데 솔직히 결정을 고민하는 나는 너무 괴롭다.

결정을 쉬이 내리지 못할 때는 정말로 내가 완벽한 선택이 하고 싶어서인건 알겠는데 이게 나를 너무 지치게 만드는 것이다. 

 남에게 결정권을 넘기는 것도 지루하고 솔직히 내가 조금 더 마음이 가는 쪽이 뻔히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결정을 미루는 행위를 인지하고 나니 스스로가 참 바보같이 느껴진다. 물론 다른이와의 선택에서는 그 사람의 마음/선호를 배려하고자 결정을 넘겨주는 경우도 있다. 그 정도는 예의라 충분히 생각한다.


 왠지모를 안타까움이 나 스스로에게 머물러 있는걸 보고 나는 결정장애를 최대한 없애려고 한다.

 솔직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단번에 결정내리기 혹은 그 중 더 재밌게 느껴지는걸 고르고 대신에 후회하지 않기 라던가 다음에 다른거 택하기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고민할것도 많고 생각해야할 것도 많고 그냥 해야할것도 많은 이 세상에서 다양한 사공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또 다시 결정장애라는 병까지 가져가는건 내 주머니가 너무 꽉 차서 들어갈 곳도 없을거 같다.

 나 역시 그러하지만 선택을 주저하는 누군가가 이 글과 만나게 된다면 나는 한 번 해보고 말지의 마인드와 즐거움에 집중할 것을 권하고 싶다.

좌우당간 내가 해본거랑 상대방이 해본거는 어쩔때는 같고 어쩔때는 다르다는것이다. 그 때가 언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즐거울 것에 집중하면 사공들의 정보는 참고자료가 된다. 본문이 아니라. :-) 

 역시 내 인생의 본문은 내가 되야 그 논문이 쓸만 하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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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바쁜 일상덕에 운동을 주 5일을 가지 못해서 인지 살이 제법 붙었다. 

오동통 해진 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항상 '아, 헬스가야해'라는 부담이 몰려온다. 그러면 또 그날은 운동을 가는것이다. 인스타와 페이스북엔 끊임없이 몸짱 언니들이 자신의 몸을 자랑하고 있고 나는 하트를 마구 날린다.

 

 내가 원하는 몸짱은 대부분이 근육이 굉장히 도드라지는 체지방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언니들이 대부분이고, 롤모델도 대다수가 근육걸들이다. 이번에 올림픽 보면서 롤모델을 한분 더 추가 시켰는데 바로 윤성빈 선수다.

 허벅지 운동을 어떻게 하는지 검색해 보니 지금 뜬 사진으로만 해도 제법 내 허벅지를 키울 수 있겠단 자신감이 붙었다.


 근육 이야기야 풀어내자면 너무 많고 

오늘은 달리는 이야기에 대해서 조금 적어 볼까 한다.

 

 운동을 꾸준히 하다보니 (현재는 좀 루즈해졌지만,) 지칠때가 굉장히 있다. 운동의 완벽한 하루 일정은 스트레칭-워밍업-근력-유산소-스트레칭인데 사실 이렇게 완벽한 일정이 소화되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이 1-2-3-5로 끝난다. 몸이 지치니 많은 액션이 필요한 4번은 늘 제외시키는 것이다. 체지방을 제거해주는건 이 4번인데도 말이다.


 어제 저녁에 운동을 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정도로 매일이 지치고 운동 자체가 루즈해 질거면 차라리 주 5일 완벽 프로그램을 좀 풀어 줘 보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 그리고 아 오늘은 땀을 엄청 흘리고 싶은 날이네...

 그래서 대충 월 수 금은 근력을 넣은 완벽 순환으로 돌리고 화 목은 유산소에 집중해도 좋겠단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뛰었다.


 근래에 유산소 달리기를 40분 동안 내내 하지 말고 미친- 듯이 뛰었다가 잠깐 아예 쉬고 또 다시 미친-- 듯이 뛰는 이 순환을 하는게 효과가 좋다는 글과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게 생각이 나서 그대로 실행했는데 의외로 이 방법이 너무 재밌는것이다.

 달리는 그게 뭐 그리 재밌겠나 하겠지만, 그런게 있다 '미친듯이 달리고 싶은날' 과 '땀 펑펑 흘리고 싶은 날' 이 두 날을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운동법은 재밌다.


 트레드밀에 15까지 숫자를 올려서 진짜 미친듯이 원하는 만큼 다리를 사용하고 딱 멈추는데 심장은 쾅쾅쾅- 거리고 땀이 후수수 떨어지는데 기분이 최고였다.


 처음엔 그 영상을 올리고 싶어서 촬영을 했는데 너무 열정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도저히 올릴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영상만 봐도 또 달리고 싶어지는 기분이다. 

그렇게 열심히 뛰고 스트레칭을 부드럽게 하고 샤워하러 들어가는데 내 몸이 참 가뿐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40분을 꾸준히 달리거나 걸어야 한다는게 굉장히 부담스러웠구나 스스로를 토닥여줬다.


 뛰고 쉬고 뛰고 쉬고 를 반복하는 동안 나라는 사람의 여러가지 변화를 찾을 수 있었다.  

우선 체력이 좋아졌는지 달리는 시간이 늘어 났다는 것이다. 기본 원하는 만큼 꾸준히 달리는게 1분을 다 넘겼다. 그리고 약 삼십초만 쉬고 바로 다시 달리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이 패턴이 유지가 됐다. 그래서 오 체력이 꽤 좋아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은 내가 달리고 싶지 않은 이유가 사실 아파서이다. 달리다 보면 다리가 아파지는 느낌이 싫어서 이다. 골반이든 무릎이든 어깨든 뭔가 어딘가 아프다. 그런데 뛰고 쉬고 뛰고 쉬고를 하니까 뛸때마다 새로운 뜀 같이 느껴졌고 부담도 없어서 정말로 너무 개운했다. 

 

 하 - 오늘도 얼른 헬스를 가고 싶은 기분이다.

 이런 달리기라면 언제라도 환영할 것이다 .


 아무튼 나는 오늘 오랜만에 팔로 땀을 훔칠 수 있었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나면 몸속 노폐물을 제대로 내보낸 기분이 든다.

 몸이 하루만에 드라마틱해 지진 않지만, 적어도 그동안 무자비로 먹어온 육고기와 생활 노페물을 좀 내보낸 착각이 들어서 잠자는 시간이 상큼하다.


 이게 운동의 묘미라고 난 항상 말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아마 같은 생각을 하겠지?

 "나도 땀 한번 흠뻑 흘리고 싶은 날이네-"


 직장 생활이 너무너무 힘들지만 이렇게 이십분이라도 미친듯이 달리고 멈추기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레몬같은 수면을 위해서- 


 다음날 돈까스가 가뿐하고 신선해짐을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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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시작한지 한달이 조금 넘어가는거 같다.

어릴때부터 나는 참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자랐다.

내가 처음부터 그랬다기 보다 어른들이 잘 쓴다 잘 쓴다 해주신 응원이 진짜라고 생각하고 자란것이다.

그래서 인지 글쓰기는 나에게 재능이 있지만 흥미가 없어 가끔 재능 발휘하는 용도였다.

오만하다고 판단하고 싶진 않다. 어릴때여서 그냥 순진무구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

 어떤걸 적어내려가야 하는건지, 어떻게 써야 내가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을 때 처럼 군더더기 없이 쭉 내려가는 느낌을 줄 수 있을지 

엄청난 고민의 연속이다.


 또 어느 날은 소재가 생각이 불연듯 떠올랐다가, 또 사라졌다가 반복이다.

 글쓰기를 시작한 뒤부터는 -일상을 적으세요 -소재는 주변에 있습니다 -늘 기록하세요 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지내는데도 적어두고 잊어버리거나 그때의 느낌을 표현하지 못해 또 지우는 경우도 대다수다.


 아마 이래서 내가 지금은 책 쓰는게 구미가 땡기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건가 생각한다.

 

 나는 글로서 사람들에게 뭔가를 줘야겠다보다, 내가 가진 생각을 정말 재밌게 술술 읽히는 문체로 적어 내고 싶은데 지금은 그런 수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책을 한 권 당장 내는것 보다 이렇게 매일 글을 하나 올리는데 마음이 더 가는거 같다.

 

 패기넘치던 시절에 내 꿈은 28살엔 책 한권 나오는거랑 부모님 모시고 마추픽추 가는거였다.

 사실은 모로가든 가기만 하면된다고 책 한권은 나올거같다. 공동저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면에선 참 부담이지만, 시키는대로 잘 따라하다보면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공유한 책 한권이 나올거란 생각에 용기를 내본다.


 :-) 오늘은 비가 왔다가 그쳐서 바람이 찼다.


 빨간 패딩 덕분에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추위에 온 몸을 덜덜 떠는 피로 행위를 하지 않아 고맙다.


 왠지 이 글은 이렇게 마무리 하고싶다.



 어제는 하루종일 미라클팩토리 스텝들끼리 먹고 보고 이야기하고 쇼핑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끼리 있으면 정말 다양한 장르의 수다를 떨게된다.

 맛있는거 먹고 오늘 출판기념회를 위해 코.코에서 쇼핑을 하고 돌아오는 차에서 대뜸 진가록작가님(이하 가록이언니)이 "소현아 너는 언제 소중한 존재라고 느껴?"라고 물었다.

 '누군가에게로 부터?' 라고 다시 물었는데, '아니 무엇이든'이라고 언니는 말했다.

 아-, 그 질문이 나온 순간부터 아마 우리 네명, 질문을 한 사람과 질문을 지목해서 들은 사람과 운전대를 잡고 있던 사람과 그 옆자리에 앉은 모두가 그거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고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처음 내가 한 말은 "누군가가 나의 입장으로 온전히 생각해줄때." 였다.

 언니는 고개를 끄덕였고 기작가님은 그 질문에 대해 '매순간' 이라 답했고 진형작가님은 내가 단번에 알아먹긴 어려운 신앙에 관련된 이야기를 곁들으며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 느끼는 때를 말해주었다.

 그리고 가록이 언니 본인은 어떤 때냐고 물었을 때, 표현하기 애매해라는 답을 해주었다. 아마 '잘모르겠다.'라고 답해준거 같은데 내가 느낀 늬앙스는 '애매해 너무 많아서 콕 집어서 표현하기 어려워.'로 느껴져서 이렇게 표현해보았다.


 그 질문을 들은 순간 부터 나는 정답을 찾으려는 사람처럼 미친듯이 '언제일까'라는 질문에 파고 들었는데 우연히 눈에 들어온 거리위의 앙상한 은행나무가 추억을 건들여주었다.

 내가 정답을 더 찾으려 한 건, 앞에 말한 답이 정답이 아니거나 더 뛰어난 답이 아니라서 바꾸고 싶었던게 아니라 가만 생각해보니 이런 추억도 있었구나 하는 기억이 피어올라서 나누고 싶었기 때문인거 같았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이 하나의 완벽을 찾으려는 나를 반성하게하고 진정시켰다.


  학창시절 나는 손가락 사이로 바람이 스치는 그 느낌을 참 좋아했다. 그래서 그 느낌을 떠올릴 때는 그 순간의 장소로 이동하게 되는데,  봄 날에 따뜻한 볕을 맞으며 벚 꽃핀 운동장 위 나 천막아래 매점 앞이나 아카시아가 피는 등나무 아래 꼭 그런 곳이었다.

 그 은행나무를 보니 그 곳이 떠올랐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약간 언덕에 있고 운동장에 벚꽃나무가 둘러진 그런 곳이여서 볕도 잘 들고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 오는 그런 곳이었다.

 어른이 되어 다양한 벚꽃축제를 다녀봤지만, 그때 학교에서 본 벚꽃만큼 아름답지도 않았고 설레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벚꽃과 봄의 설렘을 찾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내가 느낄 수 없었던 이유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설렘의 순간이 모두가 하교한 그 학교에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 짧은 순간 시간여행을 하며 언제 내가 또 소중한 존재라고 느꼈었는지 기억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저 마른 가지에 푸른 잎이 차오르고 그게 바람에 흔들리는걸 보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존재라고 느껴져요. 그래서 참 규정하기 어렵고 매순간 다양하게 느껴요"라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가록이 언니는 내 말에 크게 공감했고 아마 모두가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이 질문의 답을 생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마음에 든 느낌은 '가록이 언니가 이 질문을 한 느낌을 알거 같다.' 였다.

 (단지 내 느낌이지만)그 질문을 하기 직전, 순간에 언니가 '이 순간에 있는 나는 소중한 존재구나'라고 느꼈었구나 싶었다.

 언니가 느낀 그 소중함은 어떤 온도였을지, 어떤 촉감이였을지 내 생각에 빠져 물어볼 틈이 없었지만 아마도 봄볕이 바로 내리는 운동장에 서있는 온도였지 않았을까.


 영국의 수필가 조지프 애디슨은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행복은 잘 드러나지 않으며, 화려함과 소란스러움을 적대시한다. 진정한 행복은 처음에는 자신의 삶을 즐기는데서, 다음에는 몇몇 선택된 친구와의 우정과 대화에서 온다."


 애디슨이 한 말을 우연히 스치듯 만났는데 여기서 어제 느낀 그 감정이 절묘하게 섞인 느낌이었다.

 우리가 아마 소중한 존재라고 정확하게 규정을 내렸다고 생각했지만 좀 더 생각을 해보게 된건 단 하나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소중함을 느낀 순간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떨때는 크게 느끼고 어떨땐 크게 느끼지 못할 뿐이지 소중한 존재라는걸 스스로에게서 부터 타인에게 까지 느낀다는걸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이런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감정을 공유하는 것 또한.


 가록이 언니의 질문 하나로 2018년 3월 2일이 또 소중한 순간이 되었다.

 내가 참 많이 사랑했던 그 순간과 지금 이 대화를 하고 있는 행복한 차 안과 사람들을 모두 미래에 또 되새길 수 있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소중함'을 떠올렸지만, 아마 우리는 애디슨의 말 처럼 '행복'에 대해서 확장시켜 생각했으리라 확신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역시 자신은 언제 소중한 존재라고 느꼈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될 것이다. 가록이 언니의 말 한마디는 전 세계를 '소중함'에 빠뜨려버린것이다.

 글쓰는게 참 어렵지만 아무쪼록 모두가 소중함에 취할 생각을 하니 나보다 가록이언니가 더 뿌듯해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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