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전에 화수목 짧은 2박 3일로 일본 도쿄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공항에서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신한은행에서 어플로 환전신청한걸 받아두고 가려는데 공항 책방의 선생님께서 이책을 손에 쥐시고 책정리를 하는걸 본 순간 "이쯤되면 사야하는 운명이구나 사자." 하는 생각이 들어 정가를 주고 '모모요는 아직 아흔살'을 사서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모모요는 아직 아흔살이 처음 등장하던 시기, 핑크색이 아기자기한 책이 이뻐 눈길을 끌었고 제목이 아주 내스타일이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구매까지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 후로부터 자주 책방에서도 이 책을 만났었다. 그런데도 구매로 이어지진 않았다. 여전히 나는 이 책을 구매하게 될 운명이면 언젠가 구매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나의 선택을 미래의 나에게 책임을 전가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공항에서 만난 순간, 더 고민하지 말고 사자, 마침 도쿄로 떠나기도 하니까 읽으면서 이 책의 도쿄와 내가 가서 볼 도쿄의 공간을 같이 활용해보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서문이나 분위기로 봐선 아흔살 할머니가 도쿄에 가서 [편견]을 깨부시고 여행을 하며 젊은이들에게 자극을 전해주는 내용이 이루어 져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항 서점에서 판매하는 분도 나에게 "우리나라 할매들이 모모요 할매 처럼만 살아도 참 좋을거야" 라며 나의 구매를 부추기는 멘트를 날리시길래, 아 보셨구나 그런 내용 맞겠거니 하고 책을 구매했다. 굳이 그 멘트가 아니여도 사려고 했었지만 그 멘트를 들으니 이 책에 대한 내 생각이 맞나보다 하고 힘을 실어 주었다.

 

 

 그런데 왠걸, 이 책은 내가 생각하고 그 공항 서점 아주머니가 생각한 내용이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을 했다. 그분도 나처럼 서문이나 책 껍데기를 보고 이 책 내용을 추측했었구나,

 왠지 그냥 가서 그 분께 이책 그런 내용아닌데요.. 하고 말씀드리고 싶단 마음이 올라왔다. 마음만 올라왔다.

 

 모모요 할머니의 여행기는 그렇게 화려하지도 우리에게 교훈을 줄만한 내용도 들어있지 않았다.

 다만 여행기에서 인상 깊었던 점이 있다면 하나는 [너무나 정정한 할머니가 아기 판다가 보고 싶어 멀쩡한 허리를 구부리고 말귀못알아 먹는 척하며 판다 관람줄을 역행하다가 안내원한테 걸린 사건] 과  [일본 도쿄엔 할머니의 하라주쿠라는 매력적인 이름의 거리가 있다는 것] 이다. 나머지는 1900년생 모모요할머니의 삶 전반적 일대기를 그려놓은 책이다.

 

 내 예상과 다르고 기존의 여성의 인권이 가정주부로 한정되는 시대의 이야기라 읽는게 꽤나 많이 불편하고 힘들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어이-" 라는 호칭을 쓴다던가 가정에 도움이 되지 않아 그만뒀으면 하는데도 남편이 하는 일이라 여성이 입을 다물고 응원의 말 한마디를 남긴다던가, 여자를 꽃으로 표현하는 등의 부분이 책에 있어 평생 가져갈 필욘 없겠단 생각을 하게 했다.

 

 한편으론 이런 과거의 기록을 남겨두고 한 자료로 사용할까 싶기도 해서 집에 그냥 둘까 생각도 들어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중요한건 자료가 아닌 이상 이 책을 다시 보고 싶진 않을거 같다는 것이다.

 모모요 할머니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에 묻어나는 여성을 대하는 관점이 더 이상 글을 읽을 필요성을 못느끼게 만들었다.

 그런 시대속에서 당차고 활기찬 모모요아가씨라는 인물로 모모요할머니가 등장하는데 그닥... 그렇게 시대를 거스르는 인물같지도 않았다. 다만 아흔이 넘는 나이에도 늙은이라 몸져누워있지 않고 자신의 몸을 쓰며 70,80살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런 모습은 나 역시 나이들면 이런 마인드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여행가고 싶을땐 여행 가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앞으로도 더욱 예술에 종사하며 소일거리가 아닌 일들을 하며 그렇게 쭉 활동성있게 살고 싶단 생각을 하게 해주어서 감사했다.

 

이책이 영 안좋은건 아니다. 이런 사실들이 생각을 하게 하고 문제점을 바라볼 수 있게도 해주는 오히려 좋은책이다.

 

 그중 몇 가지 부분은 자식들이 부모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지 않고 스스로 하는 행위에 대해서 [부모에게는 확실히 충격적인 사건이겠지만, 부모가 시키는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을 갖고 제대로 성장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라는 문구가 있는가 하면 [제2차 세계 대전의 끝마무리 즘 일본이 실은 전쟁에서 패하고 있던 순간에도 방송에서는 연신 '쾌거'를 외치는걸 듣고 아이들에게 "이런 건 믿으면 안돼"라고 가르치는 장면]도 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부모님의 말을 잘 듣지 않아 너무 힘들어한다.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도 진짜로 힘들어 하신다. 그리고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라고 말했다가 상처를 엄청 크게 받으시고 나를 혼내키신 일도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음에도 내 나름 설계한 인생설계도를 믿고 그거 하나만 끌어나가는 나를 내 스스로 별종 혹은 독한 고집불통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지금도 여전히 바꿀 생각이나 내 인생흐름에 있어 부모님의 말을 전적으로 따를 생각은 없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주관이 나쁜 아이가 아니고 자기 육체에 부모의 사상이 아닌 나 자신의 사상으로 서 있다는 내 생각을 맞다고 격려해주어 고마웠다.

 

 뉴스의 보도에 대해서 100%믿지 않고 의혹을 가지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모모요의 말에서 자신의 사상이 어느 한곳에 갇힌 사람이 아니구나를 알게되어 속이 시원했다. 내가 너무나 많은 어르신들의 오합지졸 편견속에 살아와서 그랬던거 같다. 누가 앓던 이를 빼주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가장 좋았고 잊지못할 장면은 역시 모모요 할머니의 마인드였다.

 

 [남편을 잃은 모모요는 주변사람들의 오만 걱정에도 아들을 대학까지보낸다. 학비가 저렴한 국립대의 치열한 경쟁속에서도 아들 다케시는 형편때문에 양조장에서 일도 하며 공부도 하는 시간을 보낸다. 주변사람들이 공부시켜라는 오지랖 걱정에 '걱정해줘서 고마워'라는 파워 마인드를 가지며 붙을 사람은 뭘 해도 붙고 떨어질 사람은 뭘해도 떨어진다는 마인드로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중 다케시 하나만 국립대학에 붙었고 이러쿵 저러쿵 쓸데없는 참견과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한방먹였다] -모모요는 아직 아흔살 중.

 

 여기서 드러나는 마인드가 나를 많이 가르쳤다.

 

 우선 나부터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리고 있는 인간이 아닌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걱정이란 이름하에 무슨 오만 오지랖을 부리는걸 배우고 자랐는지 그 오지랖이 없는것이 인간관계의 냉혹함을 만든다고 생각도 하겠지만 그걸 구분하는 선은 반드시 있다. 그 선을 잘 지키며 살기만 살아도 개인주의 사회가 아니라 따스한 이웃사회는 될 수 있다. 우리가 아직 그 '정도'의 수련이 되지 않아 오지랖과 무관심의 중간을 찾지 못하는게 많이 안타까웠고 이건 우리라고 할 것도 없이 나에게 반성으로 왔다. 정말 반성하고 살아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두번째는 믿음에 있어서 걱정하지 않는 다는 점.

 잠재의식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져온다. 그런데 이때 믿음을 가지는 마음이 중요한데 단 한순간도 불신을 가져서는 안된다. 이 아이가 헷갈려 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모모요할머니가 강한 마인드를 가진것이 존경스러웠다.

 

 마냥 나쁜 책이라 할 수 없지만 확실히 생각은 많이 하게 해주는 책임은 확실하다.

 모모요를 읽으면서 몇번 피식피식 문자를 보고 웃었다. 중요한건 이때 나도 문자만으로도 미소를 줄 수 있는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이정도면 꽤 좋은 책이 아닌가 싶다 :-)
 여전히 다시 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오싱처럼 참 마음에 많이 남을 책이 될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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