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모닝 책쓰기 토요일 주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신념-

 

예전에 가장 가치있는데 뭔지 한창 궁금할 때 이렇게 글을 적어가며 가치가 뭔지 따져본적이 있었다.

그때 가치가 궁금했던 이유는 [이랑주 작가의 좋아보이는 것들의 비밀]을 읽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좋다고 느낀다거나 매력있다고 느끼고

찾는 그 곳은 반드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왠지 나는 그런 가치있는 뭔가가 하고 싶었다.

 

예를 들면 스티브 잡스가 나한테 그랬다.

그리고 교보문고가 그랬고 스타벅스도 그들만의 뭔가가 있다고 느꼈다.

 

뭔가 굉장히 매력적이라서 사람들을 이끌기도 하고 나역시도 끌리고 거기에 머물고 싶은 그 느낌

그게 참 내가 팔고싶은 뭔가였다.

 

그런데 그 책에서 가치가 그 곳에 있어서 그렇다고 하는순간 가치가 뭔지 부터 미친듯이 찾아다닌거 같다.

 

아마 좀 충격적이었던 가치의 의미중에 하나는 [재화로 교환시 의미가 있다] 였던거 같은데 지금와서 찾아보니 뚜렷하게 그런 자료는 남아 있지않았다.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무슨말인지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그런데 이번주제에 관련된 글을 쓰려고 다시 가치가 어떤 말일까를 고민하다가 검색을 했는데 내가 엄청 착각했었나 하고 꽤나 놀랐다.

 

1.사물이 지니고 있는 쓸모

2.<철학>대상이 인간과의 관계에 의하여 지니게 되는 중요성

3.<철학>인간의 욕구나 관심의 대상 또는 목표가 되는 진, 선, 미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이 의미들을 찬찬히 읽어보는데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주제라 재밌게 느껴졌다. 관계를 기반으로 그 둘 사이의 중요한 성질과 진,선,미라 정말 설명할 수 없지만 가치에 대한 기가막힌 설명 같았다.

 내가 예술에 매력을 느낀것도 반드시 가치 때문이었다. 그 가치를 문자/언어로 규정짓지 않아도 전율을 느낀 나 자체가 알 고 있는 가치가 있었고, 머물고 싶은 장소는 내 마음이 머물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그런 가치를 이해해서 나의 것으로 소화한 후 나누는게 내 삶의 전반적 목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게 예술을 나누는 것이라던가, 인생의 희노애락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라던가 등의 다양한 문자로 바뀌어서 표현되고 있을 뿐이었다.

 가끔 내가 가진 생각들을 온전히 말로 표현하지 못해서 답답하고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뜻의 의미를 언어로 잘 표현해내면 참 좋겠는데 그게 부족할 때마다 스스로 얼마나 답답한지 애가탄다. 그리고 꼭 마무리는 그래 그걸 말로 잘 표현하는 사람이 철학자나 예술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건가보다라고 생각을 한다.

 

 한참을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내 보물지도에 적힌 문구를 보다가 가치에 대한 나만의 정의가 생각이 났다. 나의 신나는 인생 보물지도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좋은 인생 잘 살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참 후회 없이 잘- 살았다.] 이걸 보는 순간 이거구나 싶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느꼈으면 하는 감정을 내 삶의 중심가치로 잡아보잔 생각을 하게 된것이다. 그걸 시초로 죽음과 두려움 알수없음 후회 없고 싶은 내 진심까지 들여다 보면서 한동안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랑과 행복중 가장 최상위 감정이 무엇인지 브레인 스토밍처럼 떠올랐다. 한참을 고민해도 쉽게 답이 내려 지지 않았다.  나에게 사랑은 희노애락을 공유하는 행위이고 그 대상자는 무형이든 유형이든 존재하는 모든 것이고 행복 역시 희노애락 그 자체이다. 그리고 꼭 오늘 아침 독서모임에서 영욱작가님께서 말씀하신 물이 생각이났다. 물을 굳이 가르려고 했던 이유가 뭘까, 바보같이 성벽을 쌓으려고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한테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항상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이 중심이었다. 생명이 항상 귀했고 그 생명을 나누는 건 별다른 기준이 없었다. 그냥 어떤 형태로든 누군가에게 살아있는 존재라면 그게 나에게 생명이였고 나는 그게 귀했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정과 사랑 같은 걸 참 좋아해서 함께 만들어 내는 힘의 뭔가를 항상 하고 싶어했다.

 사람에게 상처 받을 때도 있고 다른 생명체에 위독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생명인 것들이 만들어 내는 순환구조를 사랑했고 그들 모든 것의 존재이유를 정말로 귀하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내가 제일 감동을 받았었다.

 그러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가 살아가야할 세상에서 멀리봐야할 것과 가슴에 품어야할 가치를 찾으려 했고 조금 더 디테일하게 다양한 요소들이 섞인 이 사회에서 눈을 감아야 할 순간과 내 소리를 내야할 순간들을 구별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아 세상에, 이 중요한 걸 가슴에 품고 머리에서 찾으니 답이 나오지 않았다는게 절실히 느껴진다.

 

 또 돌이켜 보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신념 역시 인간은 태어난 것만으로도 귀한 존재라는 것이었다.

 

 정말 눈을 뜨고 있어도 감고 있는다는건 이런것 인가 보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 아둥바둥 참 열심히도 살아오고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나라는 사실도 참 감사할 만큼 나는, 나를 이루고 있는 이 모든 세포들은 이순간을 함께 열심히 살아주고 있다.

 나라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존재가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는 인간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게 정말 없다. 어느 한 순간이라도 살아 있음을 잊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살아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내가 그동안 그렇게 살고 싶어서 애써왔나보다.

 이 세상에서 나를 만나 나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될 사람들에게 '살아 있음'을 함께 공유하는 그런 인간이 평생 되고싶다. 그러고 나면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때 후회없이 잘 살았다 생각할 거 같다.

  그리고 이 글을 마무리하며 왜 예전에 가치에 대해서 사전적의미를 봤을때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알 거 같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는 '존재 그 자체'인데 그걸 표현하지 못해 실망스러웠던 거 같다.

 

 이때까지의 글 중 가장 의식의 흐름대로 진행되는 글이지만 오늘은 이 글을 다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우리는 책을 출판할 글을 쓰고있지만, 만약 정말로 불가피해서 다듬어야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내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두고 싶다.

왜냐면 지금 무지하게 행복하고 개운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해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부경동물원을 다녀왔다.

김해 부경동물원은 뭐 이런 곳에 동물원이 있다고??! 하는 곳에 있다.

공장단지 사이에 우뚝 솓은 동물원을 보고 처음에 거짓말인줄 알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게 동물원이구나를 체감했고, 비주얼은 가희 내마음을 흔들어놨다.


​15년도 더 된거같은 초특급 비주얼에 내 심장은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경사도 얼마나 높던지, 중학교 시절이 생각이 났다.



​다시 봐도 상큼한 비주얼,

입장료는 대인 11,000원을 주고 입장했다.

너무 허름할거 같아서 돈이 비싸다 생각했는데, 전혀 - 완전 재밌게 놀다갔다는게 포인트이다.



​처음 등장하자마자 보인 친구


물개는 아닌데, 아무튼 물개아닌데



​내 개인긴데, 뒤집에서 수영하고 수염자랑하기.

찍을테면 찍어보던가.


ㅇ​

그래, 제일 작고 소중한 내가 막내 토끼.


나는 늑댄데, 그리고 맹수다.


​너가 지폐를 꺼내는걸 본 순간부턴 엉덩이를 붙이기 싫어졌다.



자기 턱뼈만한 앞발을 가진 사자를 보니 동물이 정말 다들 크구나를 실감했습니다.


이 외에도 정말 다양한 친구들이 있었고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아이들과 함께 오신 부모님들이 많으시더라구요.

이 충격적인 비주얼을 뒤로하고 오픈한지 5년된 동물원이라고 합니다.

동물원이란 자체가 동물들의 자유를 위해 둬야하는건지 아닌지 정말로 고민 많이 되게 하는데 그래도 아이들의 환경을 위해 애쓰고 처후를 개선하는게 가장 제가 바랄 일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인생을 행복으로 이끈 best 5 news!!

 

나는 행복 그 자체의 인간이다. 좋은 부모님 곁에 태어나 목숨 잘 부지해서 멋들어진 삶을 살고 있는 참 소중한 삶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쓰기 위해 한참을 고민한거 같지만 이 고민이 익숙하다 이제.

 

 행복으로 이끈 사건 첫번째는 아무래도 내가 내 스스로 예술과 존재하는 것 자체를 사랑하는 걸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타의적으로나 자의적으로 비교를 해왔던 멋드러진 학벌의 친구들과의 비교를 멈추고 각자의 행복이 있다는 걸 깨닳은 순간이었다. 이 때의 감정은 내가 평생 잊고 싶지 않다. 타인의 행복까지 바랄 수 있게 된 순간이여서 나에게 굉장히 많은 성장의 발판이 되어주었다. 타인의 행복까지 바란다는게 쉽게만 느꼈는데, 진심으로 같은 꿈을 꾸는 자를 응원한다던가, 나에게 상처를 줬지만 그사람의 안위를 나는 바라는 것이라던가 스스로만 미워하던 타인에 대하여 그 사람의 삶을 온 마음으로 존중하고 용서를 구하고 나니 이게 진짜 행복을 바라는 거란걸 알았다.

 해보니까 알았다. 해보지 않았다면 시간이 많이 걸렸을 거 같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짜릿함, 잊을 수 없다. 나혼자만의 피해의식이 부끄럽지 않고 가볍게 털어내는 기분이란, 나에게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내가 잘 못 살아온게 아니구나 그 안도감까지 스스로를 뜨겁게 사랑할 계기가 되었다.

 

 두번째 사건은 미라클모닝을 진행하며 아침에 명상을 하던 순간이었다. 베토벤의 음악을 듣는데, 척추에서부터 머리까지 '전율'이라는걸 처음 느껴봤다. 클래식을 듣고 전율을 느낀 사건이 그때가 처음이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근데 이래서 예술이라고 하는구나, 이런게 예술인거구나 라고 느낀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그날은 내가 예술에 대해서 '이해'를 한 날이다. 그 예술에 대한 이해가 나의 인생관을 설정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가치설정에서 꿈까지 쭉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었다.

 그게 내 중심이 된것이다. 예술을 하는 삶을 하는게 내 삶의 중심인데 그걸 알게 해준 그날의 아침, 그 소름돋는 순간이 참 소중하고 소중하다.

 

 세번째 사건은 바로 2009년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책을 친구로부터 받아서 읽은 순간이다.

 지금이야 이지성작가님에 대한 초특급 우상화는 멈춰진 상태이다. 그런데도 꿈꾸는 다락방이 내 인생을 행복으로 이끈 사건에 들어가는 이유는 이 책이 나를 '책 읽게 만든 시초'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나는 더 많은 책들을 접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시각이 2009년도 보다는 넒어진 상태지만 (그렇다고 확신하진 못하겠다 ) 그때는 이 책이 세상의 진리를 담은 느낌이었고 이지성을 너무 사랑했었다. 그게 계기가 되서 책을 계속 찾게되는 내가 다듬어 진거 같다. 항상 책에 대한 갈망은 있으나 그 해소를 하게끔 살짝 마중물 역할을 해준 책인 것이다. 그 당시에 이 책을 읽어 보라고 권했던 그 친구는 나의 동네베프인데 행복으로 이끈 사건에 직접적 포함은 안되어있지만 그 동네 베프들이 나의 인생의 굉장히 중대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건 확실한거 같다.

 

 네번째, 2017년 2월 기성준작가님이 "소현아 우리랑 같이 일하자!" 했을때

어느 날 프레젠트 카페로 조용히 데려가더니 거기서 함께 일하자고 권하셨을 때가 생각이 났다. 항상 스텝으로 일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세부적인거 까진 몰랐던 때였는데 어느새 스텝이 아니라 한팀이 되어 이렇게 함께 꿈을 꾸고 공유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미라클팩토리의 식구가 되어있다. 영원한건 영원히 없지만 솔직히 나에게 미라클팩토리는 특별하다. 저번주 토요일 미라클팩토리 토요독서모임에서 사랑이 뭘까에 대해서 나누다가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 배운 정의가 있었다. 그건 바로 마음이 같이 있는것, 미라클팩토리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같이 있는 곳이자, 우리 모두에게도 마음이 같이 있는 곳이란 확신이 든다.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이 남아 있는 곳이라면 그 곳은 생명의 기운이 깃드니 어찌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영원할 것이다. 현재 식구로 있으면서 매주 만나는 작가님들과 정말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성장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시간이다.

 

 마지막 2016년 5월 부산항 불꽃축제.

 반드시 다섯가지만 행복한 순간이 아닌건 우리 모두가 잘 알고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적다보면 많은 소중한 분들을 빼먹은건 아닐까 걱정이 살짝되어 괴롭지만 소중하지 않다는게 아니니까 마지막은 나에게 간절한 감동 부산항 불꽃축제를 꼽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불꽃을 보면서 소리를 지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며칠전에 아는 동생이 sns에 자신의 학교 축제에서 한 불꽃놀이를 영상으로 촬영해서 올렸었다. 

여느때처럼 나는 그런 영상이 있으면 소리부터 키워 듣는다. 역시, 여기저기서 "와-!! 우와-!!"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래서 댓글로 "듣기좋은 소리구만 ^-^" 이라고 달았더니 그 동생하는 말이 다시 들어 보니 그렇네요 였다.  이렇게 본성이 터져나오는걸 내가 쏙쏙 찾아내서 듣는 즐거움은 말로 표현을 못한다. 막 "불꽃이라는게 행복 본능을 깨운다니까 쩔지"라고 말하고 싶다. 좌우당간 누군가는 무미건조하게 하늘에 터지는 불꽃을 보며 등록금 혹은 세금이 터진다고 말하는데 전혀 개의치않는다 그 사람들은 아직 동심의 행복을 귀기울여 듣지못한거니까 내가 그걸 꺼내주면 된다. 오늘 송정해수욕장에서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폭죽을 터트리는 것이였다. 그때 또 포착된 하나, 두명의 아이들이 "와!!! 불꽃이 터져!!! 하늘에서 팡팡 터져!!!' 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신나했다. 하 정말 턱을 괴고 감상하고 싶은 순간들이다.

 2016년 5월 부산항 불꽃축제는 나에게 마음의 소리를 찾는 득음의 시간이었고 나는 그 이후 행복의 소리를 마구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꿈꾸는 다락방을 권했던 동네베프 말고 다른 동네베프는 나에게 2008년 생일 선물로 탈무드 잠언집을 선물해줬었다. 어찌나 그게 어렵던지 한번 대충 읽고 이해할 수 없어서 덮었는데 요란히도 십년이 지난 오늘 발견한 한 구절이 나를 또 작게 만든다.

 

 '우리는 맘껏 울고 나면 마음이 맑아진다. 마치 목욕을 하면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처럼. 신은 인간의 메마른 영혼에 단비를 내리듯이 눈물을 내려주셨다. 속시원하게 울고 나면, 기다렸던 단비가 내려 대지를 적셔주듯이 우리의 마음에도 새싹이 돋고 신록이 우거진다.'

 

 하필 이 페이지를 펼치다니, 이것또한 필연이겠거니 한다. 감정을 솔직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독립할 수 있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경험했기 때문에 같이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울고 솔직하게 기뻐라. 기계사회의 위험은 눈물을 부끄럽고 무익하다 표현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인간은 울고싶을 때 감정대로 울어야한다. 」

 

 미라클팩토리 식구 모두가 행복한 순간을 꼽을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많은 눈물도 흘려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셀 수 없이 즐길 수 있는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탈무드를 선물한 그녀는 현재 자신의 꿈을 위해 남미에서 여행을 하고있고 꿈꾸는 다락방을 빌려줬던 그녀는 현재 자신의 사업을 하며 야간대학을 병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절대 혼자서 자란 사람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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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보문호수를 걸었습니다.
보문단지가 워낙 유명해서 솔직히 한두번 가본 곳이 아닌데, 보문호수를 걷는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벚꽃을 사랑하는 사람하고 본다는건 이 지구에서 엄청난 일입니다.
가슴이 몽글해서 이런 글을 남깁니다.
이런걸 같이 경험한 날이면 더 많이 보고싶고 더 많이 안기고 싶은게 연인의 사랑인가봅니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같이 겪지만 인간대 인간으로 서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사랑인거 같다는 내말이 너무 어렵지 않았나 걱정스러웠다고, 너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냐는 내 물음에 “내가 아니면 누가 이해하겠어.”’라는
사람과 함께 거닐은 올해 벚꽃놀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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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 중심은 단단히 세워야할 자신의 생각이라기 보다 ,


그저 세상의 많은 것들 중 내가 꼭 그러하고픈
위치에 그 중심을 꽂아두고
끈을 멀리멀리 풀어내며 시간과 경험이라는
세상을
여행하는 일같다.

그러다 다시 돌아가고 싶을 땐 내가 땅에 박아둔 그 중심으로 가까워지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멀리 떠나도, 영 다른것 같아보여도
사실은 중심이란 닻은 꽂혀있기 때문에
그 범주안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아마 우리가 꽂아야 할 닻의 위치는
인(仁)일 것이다.

토요 꿈모닝 글쓰기 주제 나에게 열정이란? 이란 주제를 접했을때 나에게 열정은 간단했다.

[시련이 찾아왔을 때 시련의 크기보다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에 초점이 맞춰진 것]

 

 그런데 오늘 아침 알리바바그룹의 회장 마윈의 강연을 듣고 열정에 대한 생각을 다듬어 보았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아주 재미있는 실패라고 이름 붙이는걸 잊지 않았다.

 

 "저는 아주 중요한 초등학교 시험에 두번 낙제했었습니다. 중학교 시험에도 세번 낙제했죠 대학도 삼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취업을 준비했습니다 30번 떨어졌어요 경찰에 지원하니 그들이 당신은 아닌거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kFC치킨집도 갔어요 24명이 입사지원해쓴데 23명이 붙고 붙지 못한 1명이 저였습니다. 경찰엔 5명이 지원했는데 4명이 붙었어요. 그 유일한 한명은 역시 저였죠. 하버드도 지원헀습니다. 10번다 거절 당했어요. 저한테 거절은 일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실패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우린 그렇게 잘나지 않았거든요. 저도 굉장히 좌절했어요...(중략).. 문제는 그 다음에 남에게 불평만 하는가 개선방향을 나에게 맞춰서 변화하는가 입니다."

 

 이 강연을 듣고 이번년도 1월 한 리서치업체에서 잠시 아르바이트 할 때가 떠올랐다.

 

 한 대학에서 지원한 신생업체가 개발한 아이템을 회사별로 연락을 돌려 이 아이템이 자사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설문지를 안내하고 답변을 받아내야하는 일이었다. 처음엔 뭐그렇게 어려울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땐 거의 울상으로 돌아갔다.

 

 한통화를 돌릴때마다 체크를 하는데 4시간동안 내가 전화를 돌린 업체는 100군데가 넘었었다. 그런데 설문지 응답은 단 2개.

 100번의 넘는 통화를 돌리는 동안 정말 100개의 방법을 시도해서 설문지에 대한 응답을 요구했던거 같다.  말하는데 자신이 있고 내 이야기를 듣게 만들기 쉬울거라 생각했었는데 사람들은 이게 어떤 의도에 의해 진행되는 일인지 듣더라도 당장 자기의 일이라고 생각되면 그냥 거절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대부분이 안녕하세요, -대학 에서 진행하는 리서치 -. 까지만 듣고 됐습니다 하고 끊어버리기 일수였다. 그들을 탓할 순 없었다. 그냥 자기가 담당해야할 일이 되는게 싫었을 것이고, 이런일이 번번히 있어서 어설프게 응했다가 나중에 어떤결과를 불러올지 장담할수없는 일은 피하고 싶었으리라 예측했다. 나같아도 그랬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 말고 다른 분들은 설문진행을 잘 하고 있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그들에게 어떻게 했길래 응답이 나오냐고 물었는데 한결같이 그들은 "그냥 운이 좋았어요" 라고 답했다.

 

 "운이 좋았다" 이 말을 듣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개선사항은 없었다.

 사실 그들말이 맞았다. 그들이 전화를 돌렸을 때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실무자들이 었고 내가 돌린 업체의 대부분 수신자들은 업무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쉽사리 모르는 나에게 실무자와의 연결을 해주려 하지않았다. 누가 전화를 받느냐는 운이 맞았다. 그래도 너무나 차이가 나서 계속해서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따라하고 변경하면서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목소리도 바꿔보고 속도도 바꿔보고 핵심 문장의 위치도 바꿔보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결국 집에갈 땐 2개의 설문지 응답만이 남아있었다. 그것도 좀 중견기업이여서 쥐어짜내서 받았던 기억이난다.

 

 그날 집에 돌아가는길에 느낀 착찹함이 떠오른다. 일에 있어서는 참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무리 해도 남보다 못하는 일도 있다는건 이런거구나도 느꼈고, 중요한건 4시간동안 받은 수많은 [거절]이었다.

 

 내가 이렇게 거절에 약한 사람이었다니...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마주보고 받은 거절도 아니고 그냥 전화상으로 됐습니다. 툭 혹은 바빠요 쾅, 끊긴 전화인데 횟수가 쌓일수록 알수없는 우울함이 번졌다. 내가 진짜 직업으로 삼은 일도 아닌데 뭘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느냐 가볍게 여겨라 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과는 다른, 거절에 대한 내 마음의 부끄러움이었다.

 4시간 내내 거절만 당하는 경험을 처음 해봤더니 '거절'을 당하는일에 내가 참 익숙하지 않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부끄러웠고 속상했고 그랬다.

 

 거절도 근육이 있어 100번의 거절로 단단해진건지, 집에 오는 내내 거절에 익숙치 않은 내 모습이 충격이라 음악을 들으며 나를 달랬던게 좀 효과가 있었던건지 몰라도 그날 저녁 더이상 안나오셔도 될거같다는 거절에 충격받지않고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거절을 전하는 그분은 내게 너무나 미안해했다. 일을 임할때 보였던 내 모습을 높이 사주신거 같았다. 아무리 자신의 대표를 설득해도 잘 되지 않더라는 말을 해주는 모습에 괜히 내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끊는데 아쉬움이나 후회가 없었다.

 마윈의 이야기를 통해 이제야 그때 내가 왜 전혀 아쉽지도 화도 안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열정적으로 100번이 넘는 기회동안 내가 잘못한게 뭔지 내가 너무 일에 지친 사람들에게 공격적이였던건 아닌지, 나라면 어떤 느낌으로 왔을지 등등 끊임없이 방법을 찾기위해 애를 쓰고 변화를 시도했었기에 노력에 비례하는 성과가 없어도 미련이 없었던거 같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열정에 대해 한가지 이야기 해보자면 [열정적이게 다 쏟고 나면 후회가 없다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우리가 경험으로 느끼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배우기도했으니 말이다.

 

 나는 열정이란 시련이 찾아왔을 때 시련의 크기보다 해결하고자 하는데 마음의 초점이 맞춰져 행동하는걸 열정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 리서치 알바도 후회가 없었고 마윈의 이야기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열정이 가지고 있는 뜻을 다양하게 갖고 있을 지언정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미지는 공통적으로 뭔가 갖고 있는거 같다. 뜨겁게 타오르는것, 어떤일을 하게 될때 쏟아내는 인간의 에너지라던가 그런것들 말이다. 그리고 세상이 이런 열정을 청춘들에게 당연히 갖춰야할 덕목이라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다. 우리 모두는 다 같은 하트를 그려 낼 수 없는 것처럼 각자가 가진 열정의 외형적 크기나 그 열정이 가진 에너지의 크기도 너무나 천차만별이다. 몇도의 뜨거움부터 열정이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나는 그 리서치 알바를 떠날때 스스로 후회없이 깔끔히 떠날 수 있었지만, 대표의 입장에선 조금 더 시도하지 못한 열정적이지 못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사건속에서 열정적인 사람이었을까 아니었을까?

 그 물음의 답은 내가 할 수 있다는 점이 참 다행이다. 내가 어느 곳에 있던 나는 시련이 찾아왔을때 그 시련이 얼마나 큰지 보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 더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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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년전의 일이다.
한 상담가에게 내 진로에 대한 걱정을 털어 놨었고 그 상담가는 진실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굉장히 유명한 취업 컨설턴트를 알고 있으니 물어봐주겠다고 한다. 물어보는 이유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어렸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굉장히 국한되어있는 어린 풀이었다.

그리고 그 상담가와 컨설턴트는 장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 다 한번도 만나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나는 내꿈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놓치고 싶지 않은 꿈은 불꽃연출가였고 그 계열에 대해 컨설턴트라면 나보다 알수있는 방법이 있지않을까 생각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여자라서, 임신해야하는 몸이라 어느 누가 화학 물질을 만지는 현장에 두겠냐고 다그쳤다. 또 내가 한국에 있는 화약계열사 쪽을 이야기 했을때 그곳은 그런 계열사가 없이 원래 그게 이름이다. 이런 기본 적인 지식도 없이 어떻게 진로를 정한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늬앙스로 두사람이 나를 평가했다.

 그때 처음으로 남에게 도움을 준다는건 어떤건지 스스로 고민해보는 시간도 가졌던거 같다.

 도움을 요청하는 자에게 긍정적이고 밝은 방법을 찾는 것이 도움인지 현실을 인지시키는게 도움인지 딜레마에 빠졌었다.

 그 당시 내가 그들에게 상담비로 제시한건 커피 한잔 값이 었는데, 그 값으로 유명한 컨설턴트에게 엄청난 도움을 받으리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런 쪽으로 찾아보세요 라는 전문가의 방향을 듣고 싶었긴 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계열사가 아니라 그게 본 이름이다라는 이야기 하며 내가 말한 사실에 대해서 답답하다 표현했을 때 부터 그들은 나의 미래에 대해서 나처럼 고민해줄 생각이 없다는 걸 알게되었다. 

 그 계열 팀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틀리지 않았었다.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였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였기까지 삼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못가는 이유를 줄줄이 들었을때 나는 나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사관학교를 포기할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상상도 하기 싫다. 그런데 갈 수가 없고 마음이 머물지 않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도 또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좋은 운을 가진 사람이라는 확신은 있는데 왜그렇게 나는 내가 원하는 미래의 나를 만나기는 어려운걸까. 이렇게 살아 뭐하냐는 생각까지 잠깐 했었다. 그런데 생각은 잠깐이어도 내 마음에 남은 나에 대한 불신과 패배감은 삼일이 갔다.

 

 상담가는 내가 만나본적은 없지만 알고있는 언니였고 컨설턴트는 그 상담가가 잘 알던 지인이라고 했다. 그들은 나의 진로를 놓고 서로 카톡으로만 대화를 나눴고 상담가는 그 카톡내용을 캡쳐해 보내며 유명한 컨설턴트니 이 조언이 정말 현실이라고 슬프지만 받아들여서 진로를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내가 그 상담가를 자청한 언니에게 물었다.

​ 언니, 제가 그렇게 쓸모없나요?

내 답이 예상치 못했던 답인지 허둥지둥 나를 달래려 하던 그녀의 카톡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날 정말로 슬펐다. 펑펑 울고 싶은데 이를 악물고 버텼다. 왜냐면 내가 2016년 부산항불꽃축제를 보기 위해 산복도로에서 수많은 사람들속에 쌓여 불꽃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강연을 나가거나 이야기를 들려줄 때 빼먹지 않고 말하는 불꽃놀이와 나의 인연에 관한 사건이 있다. 그건 내가 처음으로 불꽃이 나만의 설렘이 아닌 모두의 동심을 건들이는 예술이구나를 알게 해준 그 때이다.

 

  그동안 사는게 바빠 잠시 잊고 지냈는데, 그 운명의 미소를 만난 날은 2시간 전 상담가들로 인해 진로로 좌절을 겪은 날이었다.

 

 2016년 5월 부산항축제를 보기위해 산복도로에 있던 나는 진로를 포기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슬픔을 억누르고 하늘위에 터지는 커다란 꽃을 보고있었다. 왜 저걸 내가 못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었다. 그러다 그냥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어 부산항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가는 내내 하늘위에 터지는 꽃을 보며 무거운 마음이 잠시 잊혀지고 기쁨과 설렘으로 바꼈었다. 그리고 부산항 입구에 도착해서 본 것은 시끄러운 소리를 잊게 만드는 핸드폰에 불꽃을 담고있는 한 아저씨의 미소였다. 그때의 전율을 잊을 수 없다. 그때 만난 내 삶의 목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동심이 담긴 미소를 나는 평생 보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대로 포기 할 수 없다는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저걸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가득 머릿속을 채웠다.

 

 그 미소가 나를 살아있는 존재라는 걸 알게 했었다.

 그들과는 이제 그 어떤 연락도 닿지 않는다. 이미 그때 그들의 존재자체를 잊었다. 이름도 기억안나는 저 먼 우주의 존재들이 되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 우연히 82년생 김지영 북pt를 준비하다 생각이 났다. 그 날 오전의 그들과 그날 오후의 그 미소가 모든게 생각이 난것이다.

 그들이 만류하고 안될거라 둘이서 고개를 저어가며 온 마음으로 안타까워했던 나는 2017년 포항불빛축제, 서울불꽃축제, 부산불꽃축제를 참여하며 꿈을 마음껏 현실로 실현시키는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내가 만약 연출가가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 혹은 쌓아야할 스펙을 줄줄 나열해서 들었다면 그 운명의 장면을 어떤 마음으로 봤을지, 아니 보기는 제대로 봤을지 알수가 없다. 어쩌면 그냥 고개돌려 스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내가 저걸 곧 하겠구나 라는 생각에 빠져서 가장 중요한 목적을 잃어버린 채 살아 갔을지 모른다.

 

 누구보다 빠르게 불꽃연출가가 되었을 지언정 또 후회했을 수 있다. 이게 내가 원하던 일인가, 내가 진짜 왜 이걸 하려고 했나 그때가 되어서 또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안되는 이유에 오기가 생겨 불꽃놀이를 더욱 가슴 아프게 그리고 뜨겁게 봤다. 하고싶다는 소망을 하늘위에 퍼지는 불꽃과 함께 풀어내며 눈물나게 가슴 아픈 현실을 억누르며


 내가 그렇게 쓸모없냐는 질문을 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제는 너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여전히 넌 안돼였으니 얼마나 상처였을까. 그만큼 잘 살고 싶었던 나는 여전히 아파야하나 라는 고민에 빠져 얼마나 슬펐을까. 그들이 말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있다. 

아마 많은 취준생이나 학생들이 자신이 생각한, 구상한 미래의 뭔가, 꿈이라 일컫는 미래의 형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많은 컨설턴트들을 찾아가지 않을까 한다.

절박한 심정이고 참 간절할 것이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신은 참 필요한 사람이고, 당신을 필요로 하는 그곳은 당신에게 가고 있는 중이니, 너무 많은 바람에 치이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여러분 마음에 있는 그 묵직한 것들은 세상의 유혹에 가볍게 치이지 않고 엄한곳으로 당신이 날아가지 않게 여러분을 잡아줄 좋은 닻(앵커)이되기도 한다는걸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내가 그 마음의 무게가 없었다면 진짜 소중한걸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공에 취해 허공을 떠다녔을 지 모른다. 결국엔 제자리로 돌아왔을 것이다. 마음에 약간의 무게감을 두길 바란다. 당신의 운명은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걸 늘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의 마음에 묵직한 닻을 달아준 그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그들이 항상 이야기 하던 그 앵커링을 나는 내 삶의 중심에 제대로 꽂은 것이다.

나는 그들의 걱정덕분에 너무나도 잘 지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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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엄마는 중학교 1학년이다.

 

 장녀로 태어나 밑에 남동생 둘을 데리고 어릴 때 부터 살림을 사느라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한 엄마가 2018년 올해 중학교에 신청해서 1학년이 된것이다. 내 기억에도 옛날부터 엄마는 항상 공부가 하고 싶다고 했던거 같은데 그 꿈을 이제 실현시키는 걸 보고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모른다.

 

 엄마의 학교는 장림에 있는 보건중고등학교이다.

이곳에 가면 엄마 연령대의 분들 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매우 다양한 동창들이 있다고 한다.

 

 하루는 엄마가 내 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 대뜸 이러는 것이다.

 "야 -!! 브이 하고 븨 중에서 어떤게 옳은 표현이게!?!?!?!?"

 

 당황해서 가만히 있었다.

 

 "븨지롱~~ 그것도 모르제!?!?!? 꺄하하하" 하고 문을 쾅 닫고 나갔다.

 

 그냥 웃음이 나와서 허허하고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다양한 생각이 들었지만 배움의 기쁨을 표현하고 싶어 저러는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엄마는 매일 아침 학교를 간다.

 그리고 집을 나설때 꼭 이렇게 말하고 간다.

 "학교 다녀 오겠습니다.-!"

  아버지가 그러면 "네 ~" 하고 답을 해준다.

 그렇게 자기가 먹을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공부를 하러 가신다.

 

  그말이 얼마나 하고 싶었을지, 또 할머니한테 그래 다녀오너라 라는 말이 얼마나 듣고 싶었을지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이해감이 마음을 휘감는다.

 

  요즘은 엄마가 평일에 학교를 다니느라 바빠 주말엔 꼭 어디가서 바람이라도 쐬던가 시내에서 영화를 보거나 커피 한잔을 하던 뭔가 놀고 싶어하신다. 예전에 우리가 그랬던거 처럼.

 우리가 학창시절에 그렇게 기를 쓰고 새벽까지 컴퓨터를 하려고 하거나 밖에 나가고 싶어한 그 마음을 곧 이해하시지 않을까 한다. :-)

 

 엄마네 학교는 매주 5교시 수업이고 수업이 마치면 우리 처럼 칠판정리, 교실청소등 학급활동을 하고 수업을 마친다고 한다.

 이제는 본인 스스로가 자주 깜빡한다고 생각한 엄마는 신발장에 엄마시간표를 붙여놓고 다닌다.

 

 조금 놀란점이 있다면 시간표 가장 아래 적혀있는 문구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자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마인드셋팅문구가 적혀 있다.

 만학도도 보통 만학도들이 아니다 보니 공부를 하다가도 먹고사는 문제가 생기면 며칠씩 학교를 못오는 학생들이 생긴다고 한다. 그런이들에게 시간표의 이 문구가 얼마나 큰 힘이 될까

 노련한 그 선생님들의 진심에 감동받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엄마가 학교 생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학과 영어는 처음이라 입에 붙지 않아 익숙해 지는 연습중이라 하셨고 선생님도 너무 잘 가르쳐 주신다고한다.

 그러다 사회과부도를 펼쳐서 선생님이 불러주는 지도를 찾는데 다들 너무 작은 글씨라 찾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또 엄마는 칠판을 볼때는 안경을 끼지만 가까운걸 볼땐 안경을 벗고 찾는데 엄마의 짝지는 칠판은 맨눈으로 책은 안경을 낀 눈으로 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뭔가 웃겨서 명치가 간질간질했다.

얼마나 진심으로 그 공부자리에 임할까? 그리고 어릴때의 소망을 나이들어서 풀어 가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자면 참 안심도되고 행복하다.

 

 엄마의 학교는 이년동안 방학없이 꼬박 학교 프로그램이 이어지는 곳이라 멀지 않아 곧 중졸의 엄마를 만날거 같다. 아마 이년이 지난 후 중학교를 졸업하는 엄마가 스스로 얼마나 벅차고 감동에 못이겨 눈물을 보일지 안봐도 뻔하지만 진심으로 엄마의 학업을 응원한다.

 

 이제 소문자와 대문자를 구분하고 스스로 활용하는 재미에 푹 빠지신 한여사님께 영어 발음기호에 관해 좀 더 시달려야겠지만 말이다. 얼른 돈 많이 벌어서 내가 학교다닐 때 처럼 학교가는 엄마 주머니에 간식 사드세요 하고 용돈도 드리고 싶다. :-)

 

 엄마랑 나 둘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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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을 갔다 와서 보니 유럽풍의 뭐 라는 그 말이 느낌이 온전히 이해 됐어요]

 며칠전 같은 팀원인 하팀장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업무차 팀원들이 캄보디아와 홍콩으로 출장을 떠나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느낀점을 이야기 해준것이다.

 

 유럽풍, 일본식 등의 표현을 우리가 상품을 설명할때 많이 사용하는데 우연히 이번에 관련 정보를 찾다가 저 수식어를 보게 되었고 유럽을 갔다 온 자신이 그 유럽풍의 무엇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래 맞아 하며 그 유럽풍이라는 이미지를 실제 자신이 보고 느낀 유럽과 매치할 수 있었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머리나 학습된 정보가 아니라 경험에서 나오는 마음의 이해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하팀장님이 받았다는 동감(同感)을 얻어 느낄 수 있었다.

 

 경험이 부족해서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경험이 쌓여 "맞아 맞아" 하며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져오는 사건이란 사람을 다양한 방면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것같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도 충분히 대단하고 멋지다. 이것이 어떤 때엔 전율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가슴이 이해하는 건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내 시야를 좁게 만들 수 도 있는 재미난 세상이다.

 

하 팀장님 덕분에 나는 동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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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만하다.

 나는 많이 모자르다.

 

 나 혼자 다 안다고 생각하며 세상이 나를 질투해 내 속을 시끄럽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나의 문제보다 우선 남탓이 먼저였다.  

 사회의 편견이라 여겨왔던 일들은 내 안의 나의 편견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세상의 사람들이 내 기대치 만큼 따라오지 않아 그들을 미워하고 질투하고 속앓이 하면서 나를 괴롭혀왔다.

 그리고 그들을 나무라며 문제다 용기를 내 봐라 다그쳐왔다.

 

 그게 누구를 위한 말이었는지, 누가 답답한건지 답을 말 할 수 없다.

 그 누구도 내가 문제가 있는데 답이 좀 필요해 답 좀 부탁해 라고 부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오만해서 아는것이 없어서 미워하고 답답해 했던 것이다.

 

 정말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것도 모르고 나 혼자 속앓이하며 스스로 옹고집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연애를 할 때도"너가 내 마음을 몰라준게 잘못이지." 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며, 내가 원하는 행동이나 답을 듣지 못하면 이내 토라져서 입을 쭈욱 내미는 나는 어른실격이다.

 

 정말 많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고 다른 시각도 볼 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가장 중요한 나의 편견을 벗어내지 못하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항상 기억하자. 타인을 답답해 하지마라.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다보면 그럴 만한 이유를 이해할테니

답답해 하지말고 해결사가 되려고도 하지말자. 그사람의 해결사는 그 사람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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