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CTION

 

It dosen't matter what you are thinking or what fear you have , if you just do it !

Action is the only thing that matters.

I can see that at the end of my life, i am not going to look back and say,

"I wish I had taken more action"

 

-Diana von Welanetz Wentworth

 

It does matter what you thinking all the day

it is going to change everything according to what you are thinking

The Think is subconsciuos.

 

-Art.ha

 

winning is not a 'sometime' thing.

you don't win once in a while

you don't do things right once in a while

you do them right all of the time

winning is a habit, unfortunately, so is losing.

 

-Vince Lombardi

 

sometime/sometimes

 

 

If we are to achieve results never before accomplished,

we must expect to employ methods never before attempted.

-Francis Ba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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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 중심은 단단히 세워야할 자신의 생각이라기 보다 ,


그저 세상의 많은 것들 중 내가 꼭 그러하고픈
위치에 그 중심을 꽂아두고
끈을 멀리멀리 풀어내며 시간과 경험이라는
세상을
여행하는 일같다.

그러다 다시 돌아가고 싶을 땐 내가 땅에 박아둔 그 중심으로 가까워지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멀리 떠나도, 영 다른것 같아보여도
사실은 중심이란 닻은 꽂혀있기 때문에
그 범주안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아마 우리가 꽂아야 할 닻의 위치는
인(仁)일 것이다.



화를 잘 내는 법이라

말만 들어도 유익하고 유니크하다.

이 책 제목을 처음 접하고 무조건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했다.

화가 어떤 감정인지 어떻게 튀어나오는지 나오기 전에 뭘 할지 이미 나와 버린 그 화를 어떻게 다룰지 등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있고 화의 온도 체크하기 등 재미있는 활동도 있어서 읽는 내내 유익했다.

그런데 이전에 읽었던 -이것도 폭력이야?- 라는 책을 읽을 때 느꼈던 복잡한 감정을 이번책에서도 느끼는 경험을 했다.

그 복잡한 감정이라는 건 예를 들면 이런것이다. 상대가 잘못해서 내가 화를 낸건데 ... 혹은 그러면 상대가 나한테 피해를 끼쳐도 화를 내지 않을 방법을 찾으라고? 같은 것이다.

이것도 폭력이야? 라는 책에는 어떤 이유로든 폭력은 정당성이 성립되지 않으니 학교폭력에 시달린다면 선생님이나 주위에 도와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도움을 구하라고 한다. 화 잘내는 법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참 받아들이기 어려워 복잡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설명해주기 위해서 곱씹고 곱씹어 보니 왜 그래야하는지 알거 같아서 그동안의 낡은 생각이 탈피되는구나를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쟤가 먼저 나 괴롭혔잖아-, 그러니까 내가
정당해 ! 라는 나의 기준이 갖고있는 상식, 세상의 상식 상식이 만들어 내는 환경속에 자라왔다는걸 너무나 절감하게 됐다.

이게 많은 사회의 질서를 만들고 평화를 약속해주기도 했지만 , 폭력과 화를 만든다는 걸 알려준 재밌는 책이었다.


꼭 읽어보길 강추한다.

토요 꿈모닝 글쓰기 주제 나에게 열정이란? 이란 주제를 접했을때 나에게 열정은 간단했다.

[시련이 찾아왔을 때 시련의 크기보다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에 초점이 맞춰진 것]

 

 그런데 오늘 아침 알리바바그룹의 회장 마윈의 강연을 듣고 열정에 대한 생각을 다듬어 보았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아주 재미있는 실패라고 이름 붙이는걸 잊지 않았다.

 

 "저는 아주 중요한 초등학교 시험에 두번 낙제했었습니다. 중학교 시험에도 세번 낙제했죠 대학도 삼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취업을 준비했습니다 30번 떨어졌어요 경찰에 지원하니 그들이 당신은 아닌거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kFC치킨집도 갔어요 24명이 입사지원해쓴데 23명이 붙고 붙지 못한 1명이 저였습니다. 경찰엔 5명이 지원했는데 4명이 붙었어요. 그 유일한 한명은 역시 저였죠. 하버드도 지원헀습니다. 10번다 거절 당했어요. 저한테 거절은 일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실패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우린 그렇게 잘나지 않았거든요. 저도 굉장히 좌절했어요...(중략).. 문제는 그 다음에 남에게 불평만 하는가 개선방향을 나에게 맞춰서 변화하는가 입니다."

 

 이 강연을 듣고 이번년도 1월 한 리서치업체에서 잠시 아르바이트 할 때가 떠올랐다.

 

 한 대학에서 지원한 신생업체가 개발한 아이템을 회사별로 연락을 돌려 이 아이템이 자사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설문지를 안내하고 답변을 받아내야하는 일이었다. 처음엔 뭐그렇게 어려울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땐 거의 울상으로 돌아갔다.

 

 한통화를 돌릴때마다 체크를 하는데 4시간동안 내가 전화를 돌린 업체는 100군데가 넘었었다. 그런데 설문지 응답은 단 2개.

 100번의 넘는 통화를 돌리는 동안 정말 100개의 방법을 시도해서 설문지에 대한 응답을 요구했던거 같다.  말하는데 자신이 있고 내 이야기를 듣게 만들기 쉬울거라 생각했었는데 사람들은 이게 어떤 의도에 의해 진행되는 일인지 듣더라도 당장 자기의 일이라고 생각되면 그냥 거절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대부분이 안녕하세요, -대학 에서 진행하는 리서치 -. 까지만 듣고 됐습니다 하고 끊어버리기 일수였다. 그들을 탓할 순 없었다. 그냥 자기가 담당해야할 일이 되는게 싫었을 것이고, 이런일이 번번히 있어서 어설프게 응했다가 나중에 어떤결과를 불러올지 장담할수없는 일은 피하고 싶었으리라 예측했다. 나같아도 그랬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 말고 다른 분들은 설문진행을 잘 하고 있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그들에게 어떻게 했길래 응답이 나오냐고 물었는데 한결같이 그들은 "그냥 운이 좋았어요" 라고 답했다.

 

 "운이 좋았다" 이 말을 듣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개선사항은 없었다.

 사실 그들말이 맞았다. 그들이 전화를 돌렸을 때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실무자들이 었고 내가 돌린 업체의 대부분 수신자들은 업무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쉽사리 모르는 나에게 실무자와의 연결을 해주려 하지않았다. 누가 전화를 받느냐는 운이 맞았다. 그래도 너무나 차이가 나서 계속해서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따라하고 변경하면서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목소리도 바꿔보고 속도도 바꿔보고 핵심 문장의 위치도 바꿔보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결국 집에갈 땐 2개의 설문지 응답만이 남아있었다. 그것도 좀 중견기업이여서 쥐어짜내서 받았던 기억이난다.

 

 그날 집에 돌아가는길에 느낀 착찹함이 떠오른다. 일에 있어서는 참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무리 해도 남보다 못하는 일도 있다는건 이런거구나도 느꼈고, 중요한건 4시간동안 받은 수많은 [거절]이었다.

 

 내가 이렇게 거절에 약한 사람이었다니...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마주보고 받은 거절도 아니고 그냥 전화상으로 됐습니다. 툭 혹은 바빠요 쾅, 끊긴 전화인데 횟수가 쌓일수록 알수없는 우울함이 번졌다. 내가 진짜 직업으로 삼은 일도 아닌데 뭘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느냐 가볍게 여겨라 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과는 다른, 거절에 대한 내 마음의 부끄러움이었다.

 4시간 내내 거절만 당하는 경험을 처음 해봤더니 '거절'을 당하는일에 내가 참 익숙하지 않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부끄러웠고 속상했고 그랬다.

 

 거절도 근육이 있어 100번의 거절로 단단해진건지, 집에 오는 내내 거절에 익숙치 않은 내 모습이 충격이라 음악을 들으며 나를 달랬던게 좀 효과가 있었던건지 몰라도 그날 저녁 더이상 안나오셔도 될거같다는 거절에 충격받지않고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거절을 전하는 그분은 내게 너무나 미안해했다. 일을 임할때 보였던 내 모습을 높이 사주신거 같았다. 아무리 자신의 대표를 설득해도 잘 되지 않더라는 말을 해주는 모습에 괜히 내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전화를 끊는데 아쉬움이나 후회가 없었다.

 마윈의 이야기를 통해 이제야 그때 내가 왜 전혀 아쉽지도 화도 안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열정적으로 100번이 넘는 기회동안 내가 잘못한게 뭔지 내가 너무 일에 지친 사람들에게 공격적이였던건 아닌지, 나라면 어떤 느낌으로 왔을지 등등 끊임없이 방법을 찾기위해 애를 쓰고 변화를 시도했었기에 노력에 비례하는 성과가 없어도 미련이 없었던거 같다.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열정에 대해 한가지 이야기 해보자면 [열정적이게 다 쏟고 나면 후회가 없다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우리가 경험으로 느끼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배우기도했으니 말이다.

 

 나는 열정이란 시련이 찾아왔을 때 시련의 크기보다 해결하고자 하는데 마음의 초점이 맞춰져 행동하는걸 열정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 리서치 알바도 후회가 없었고 마윈의 이야기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열정이 가지고 있는 뜻을 다양하게 갖고 있을 지언정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미지는 공통적으로 뭔가 갖고 있는거 같다. 뜨겁게 타오르는것, 어떤일을 하게 될때 쏟아내는 인간의 에너지라던가 그런것들 말이다. 그리고 세상이 이런 열정을 청춘들에게 당연히 갖춰야할 덕목이라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다. 우리 모두는 다 같은 하트를 그려 낼 수 없는 것처럼 각자가 가진 열정의 외형적 크기나 그 열정이 가진 에너지의 크기도 너무나 천차만별이다. 몇도의 뜨거움부터 열정이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나는 그 리서치 알바를 떠날때 스스로 후회없이 깔끔히 떠날 수 있었지만, 대표의 입장에선 조금 더 시도하지 못한 열정적이지 못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사건속에서 열정적인 사람이었을까 아니었을까?

 그 물음의 답은 내가 할 수 있다는 점이 참 다행이다. 내가 어느 곳에 있던 나는 시련이 찾아왔을때 그 시련이 얼마나 큰지 보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서 더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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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년전의 일이다.
한 상담가에게 내 진로에 대한 걱정을 털어 놨었고 그 상담가는 진실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굉장히 유명한 취업 컨설턴트를 알고 있으니 물어봐주겠다고 한다. 물어보는 이유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때 나는 어렸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굉장히 국한되어있는 어린 풀이었다.

그리고 그 상담가와 컨설턴트는 장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 다 한번도 만나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나는 내꿈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놓치고 싶지 않은 꿈은 불꽃연출가였고 그 계열에 대해 컨설턴트라면 나보다 알수있는 방법이 있지않을까 생각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여자라서, 임신해야하는 몸이라 어느 누가 화학 물질을 만지는 현장에 두겠냐고 다그쳤다. 또 내가 한국에 있는 화약계열사 쪽을 이야기 했을때 그곳은 그런 계열사가 없이 원래 그게 이름이다. 이런 기본 적인 지식도 없이 어떻게 진로를 정한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늬앙스로 두사람이 나를 평가했다.

 그때 처음으로 남에게 도움을 준다는건 어떤건지 스스로 고민해보는 시간도 가졌던거 같다.

 도움을 요청하는 자에게 긍정적이고 밝은 방법을 찾는 것이 도움인지 현실을 인지시키는게 도움인지 딜레마에 빠졌었다.

 그 당시 내가 그들에게 상담비로 제시한건 커피 한잔 값이 었는데, 그 값으로 유명한 컨설턴트에게 엄청난 도움을 받으리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런 쪽으로 찾아보세요 라는 전문가의 방향을 듣고 싶었긴 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계열사가 아니라 그게 본 이름이다라는 이야기 하며 내가 말한 사실에 대해서 답답하다 표현했을 때 부터 그들은 나의 미래에 대해서 나처럼 고민해줄 생각이 없다는 걸 알게되었다. 

 그 계열 팀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틀리지 않았었다.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였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였기까지 삼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못가는 이유를 줄줄이 들었을때 나는 나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사관학교를 포기할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상상도 하기 싫다. 그런데 갈 수가 없고 마음이 머물지 않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번에도 또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좋은 운을 가진 사람이라는 확신은 있는데 왜그렇게 나는 내가 원하는 미래의 나를 만나기는 어려운걸까. 이렇게 살아 뭐하냐는 생각까지 잠깐 했었다. 그런데 생각은 잠깐이어도 내 마음에 남은 나에 대한 불신과 패배감은 삼일이 갔다.

 

 상담가는 내가 만나본적은 없지만 알고있는 언니였고 컨설턴트는 그 상담가가 잘 알던 지인이라고 했다. 그들은 나의 진로를 놓고 서로 카톡으로만 대화를 나눴고 상담가는 그 카톡내용을 캡쳐해 보내며 유명한 컨설턴트니 이 조언이 정말 현실이라고 슬프지만 받아들여서 진로를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내가 그 상담가를 자청한 언니에게 물었다.

​ 언니, 제가 그렇게 쓸모없나요?

내 답이 예상치 못했던 답인지 허둥지둥 나를 달래려 하던 그녀의 카톡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날 정말로 슬펐다. 펑펑 울고 싶은데 이를 악물고 버텼다. 왜냐면 내가 2016년 부산항불꽃축제를 보기 위해 산복도로에서 수많은 사람들속에 쌓여 불꽃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강연을 나가거나 이야기를 들려줄 때 빼먹지 않고 말하는 불꽃놀이와 나의 인연에 관한 사건이 있다. 그건 내가 처음으로 불꽃이 나만의 설렘이 아닌 모두의 동심을 건들이는 예술이구나를 알게 해준 그 때이다.

 

  그동안 사는게 바빠 잠시 잊고 지냈는데, 그 운명의 미소를 만난 날은 2시간 전 상담가들로 인해 진로로 좌절을 겪은 날이었다.

 

 2016년 5월 부산항축제를 보기위해 산복도로에 있던 나는 진로를 포기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슬픔을 억누르고 하늘위에 터지는 커다란 꽃을 보고있었다. 왜 저걸 내가 못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었다. 그러다 그냥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어 부산항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가는 내내 하늘위에 터지는 꽃을 보며 무거운 마음이 잠시 잊혀지고 기쁨과 설렘으로 바꼈었다. 그리고 부산항 입구에 도착해서 본 것은 시끄러운 소리를 잊게 만드는 핸드폰에 불꽃을 담고있는 한 아저씨의 미소였다. 그때의 전율을 잊을 수 없다. 그때 만난 내 삶의 목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동심이 담긴 미소를 나는 평생 보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대로 포기 할 수 없다는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저걸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가득 머릿속을 채웠다.

 

 그 미소가 나를 살아있는 존재라는 걸 알게 했었다.

 그들과는 이제 그 어떤 연락도 닿지 않는다. 이미 그때 그들의 존재자체를 잊었다. 이름도 기억안나는 저 먼 우주의 존재들이 되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 우연히 82년생 김지영 북pt를 준비하다 생각이 났다. 그 날 오전의 그들과 그날 오후의 그 미소가 모든게 생각이 난것이다.

 그들이 만류하고 안될거라 둘이서 고개를 저어가며 온 마음으로 안타까워했던 나는 2017년 포항불빛축제, 서울불꽃축제, 부산불꽃축제를 참여하며 꿈을 마음껏 현실로 실현시키는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내가 만약 연출가가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 혹은 쌓아야할 스펙을 줄줄 나열해서 들었다면 그 운명의 장면을 어떤 마음으로 봤을지, 아니 보기는 제대로 봤을지 알수가 없다. 어쩌면 그냥 고개돌려 스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내가 저걸 곧 하겠구나 라는 생각에 빠져서 가장 중요한 목적을 잃어버린 채 살아 갔을지 모른다.

 

 누구보다 빠르게 불꽃연출가가 되었을 지언정 또 후회했을 수 있다. 이게 내가 원하던 일인가, 내가 진짜 왜 이걸 하려고 했나 그때가 되어서 또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안되는 이유에 오기가 생겨 불꽃놀이를 더욱 가슴 아프게 그리고 뜨겁게 봤다. 하고싶다는 소망을 하늘위에 퍼지는 불꽃과 함께 풀어내며 눈물나게 가슴 아픈 현실을 억누르며


 내가 그렇게 쓸모없냐는 질문을 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제는 너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이 여전히 넌 안돼였으니 얼마나 상처였을까. 그만큼 잘 살고 싶었던 나는 여전히 아파야하나 라는 고민에 빠져 얼마나 슬펐을까. 그들이 말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있다. 

아마 많은 취준생이나 학생들이 자신이 생각한, 구상한 미래의 뭔가, 꿈이라 일컫는 미래의 형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많은 컨설턴트들을 찾아가지 않을까 한다.

절박한 심정이고 참 간절할 것이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신은 참 필요한 사람이고, 당신을 필요로 하는 그곳은 당신에게 가고 있는 중이니, 너무 많은 바람에 치이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여러분 마음에 있는 그 묵직한 것들은 세상의 유혹에 가볍게 치이지 않고 엄한곳으로 당신이 날아가지 않게 여러분을 잡아줄 좋은 닻(앵커)이되기도 한다는걸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내가 그 마음의 무게가 없었다면 진짜 소중한걸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공에 취해 허공을 떠다녔을 지 모른다. 결국엔 제자리로 돌아왔을 것이다. 마음에 약간의 무게감을 두길 바란다. 당신의 운명은 당신을 버리지 않는다는 걸 늘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의 마음에 묵직한 닻을 달아준 그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그들이 항상 이야기 하던 그 앵커링을 나는 내 삶의 중심에 제대로 꽂은 것이다.

나는 그들의 걱정덕분에 너무나도 잘 지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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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엄마는 중학교 1학년이다.

 

 장녀로 태어나 밑에 남동생 둘을 데리고 어릴 때 부터 살림을 사느라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한 엄마가 2018년 올해 중학교에 신청해서 1학년이 된것이다. 내 기억에도 옛날부터 엄마는 항상 공부가 하고 싶다고 했던거 같은데 그 꿈을 이제 실현시키는 걸 보고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모른다.

 

 엄마의 학교는 장림에 있는 보건중고등학교이다.

이곳에 가면 엄마 연령대의 분들 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매우 다양한 동창들이 있다고 한다.

 

 하루는 엄마가 내 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 대뜸 이러는 것이다.

 "야 -!! 브이 하고 븨 중에서 어떤게 옳은 표현이게!?!?!?!?"

 

 당황해서 가만히 있었다.

 

 "븨지롱~~ 그것도 모르제!?!?!? 꺄하하하" 하고 문을 쾅 닫고 나갔다.

 

 그냥 웃음이 나와서 허허하고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다양한 생각이 들었지만 배움의 기쁨을 표현하고 싶어 저러는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엄마는 매일 아침 학교를 간다.

 그리고 집을 나설때 꼭 이렇게 말하고 간다.

 "학교 다녀 오겠습니다.-!"

  아버지가 그러면 "네 ~" 하고 답을 해준다.

 그렇게 자기가 먹을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공부를 하러 가신다.

 

  그말이 얼마나 하고 싶었을지, 또 할머니한테 그래 다녀오너라 라는 말이 얼마나 듣고 싶었을지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이해감이 마음을 휘감는다.

 

  요즘은 엄마가 평일에 학교를 다니느라 바빠 주말엔 꼭 어디가서 바람이라도 쐬던가 시내에서 영화를 보거나 커피 한잔을 하던 뭔가 놀고 싶어하신다. 예전에 우리가 그랬던거 처럼.

 우리가 학창시절에 그렇게 기를 쓰고 새벽까지 컴퓨터를 하려고 하거나 밖에 나가고 싶어한 그 마음을 곧 이해하시지 않을까 한다. :-)

 

 엄마네 학교는 매주 5교시 수업이고 수업이 마치면 우리 처럼 칠판정리, 교실청소등 학급활동을 하고 수업을 마친다고 한다.

 이제는 본인 스스로가 자주 깜빡한다고 생각한 엄마는 신발장에 엄마시간표를 붙여놓고 다닌다.

 

 조금 놀란점이 있다면 시간표 가장 아래 적혀있는 문구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자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마인드셋팅문구가 적혀 있다.

 만학도도 보통 만학도들이 아니다 보니 공부를 하다가도 먹고사는 문제가 생기면 며칠씩 학교를 못오는 학생들이 생긴다고 한다. 그런이들에게 시간표의 이 문구가 얼마나 큰 힘이 될까

 노련한 그 선생님들의 진심에 감동받았다.

 

오늘은 오랜만에 집에서 저녁을 먹는데 엄마가 학교 생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학과 영어는 처음이라 입에 붙지 않아 익숙해 지는 연습중이라 하셨고 선생님도 너무 잘 가르쳐 주신다고한다.

 그러다 사회과부도를 펼쳐서 선생님이 불러주는 지도를 찾는데 다들 너무 작은 글씨라 찾는데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또 엄마는 칠판을 볼때는 안경을 끼지만 가까운걸 볼땐 안경을 벗고 찾는데 엄마의 짝지는 칠판은 맨눈으로 책은 안경을 낀 눈으로 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뭔가 웃겨서 명치가 간질간질했다.

얼마나 진심으로 그 공부자리에 임할까? 그리고 어릴때의 소망을 나이들어서 풀어 가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자면 참 안심도되고 행복하다.

 

 엄마의 학교는 이년동안 방학없이 꼬박 학교 프로그램이 이어지는 곳이라 멀지 않아 곧 중졸의 엄마를 만날거 같다. 아마 이년이 지난 후 중학교를 졸업하는 엄마가 스스로 얼마나 벅차고 감동에 못이겨 눈물을 보일지 안봐도 뻔하지만 진심으로 엄마의 학업을 응원한다.

 

 이제 소문자와 대문자를 구분하고 스스로 활용하는 재미에 푹 빠지신 한여사님께 영어 발음기호에 관해 좀 더 시달려야겠지만 말이다. 얼른 돈 많이 벌어서 내가 학교다닐 때 처럼 학교가는 엄마 주머니에 간식 사드세요 하고 용돈도 드리고 싶다. :-)

 

 엄마랑 나 둘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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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을 갔다 와서 보니 유럽풍의 뭐 라는 그 말이 느낌이 온전히 이해 됐어요]

 며칠전 같은 팀원인 하팀장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업무차 팀원들이 캄보디아와 홍콩으로 출장을 떠나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느낀점을 이야기 해준것이다.

 

 유럽풍, 일본식 등의 표현을 우리가 상품을 설명할때 많이 사용하는데 우연히 이번에 관련 정보를 찾다가 저 수식어를 보게 되었고 유럽을 갔다 온 자신이 그 유럽풍의 무엇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래 맞아 하며 그 유럽풍이라는 이미지를 실제 자신이 보고 느낀 유럽과 매치할 수 있었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머리나 학습된 정보가 아니라 경험에서 나오는 마음의 이해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하팀장님이 받았다는 동감(同感)을 얻어 느낄 수 있었다.

 

 경험이 부족해서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경험이 쌓여 "맞아 맞아" 하며 가슴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져오는 사건이란 사람을 다양한 방면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것같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도 충분히 대단하고 멋지다. 이것이 어떤 때엔 전율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가슴이 이해하는 건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내 시야를 좁게 만들 수 도 있는 재미난 세상이다.

 

하 팀장님 덕분에 나는 동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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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오만하다.

 나는 많이 모자르다.

 

 나 혼자 다 안다고 생각하며 세상이 나를 질투해 내 속을 시끄럽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나의 문제보다 우선 남탓이 먼저였다.  

 사회의 편견이라 여겨왔던 일들은 내 안의 나의 편견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세상의 사람들이 내 기대치 만큼 따라오지 않아 그들을 미워하고 질투하고 속앓이 하면서 나를 괴롭혀왔다.

 그리고 그들을 나무라며 문제다 용기를 내 봐라 다그쳐왔다.

 

 그게 누구를 위한 말이었는지, 누가 답답한건지 답을 말 할 수 없다.

 그 누구도 내가 문제가 있는데 답이 좀 필요해 답 좀 부탁해 라고 부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오만해서 아는것이 없어서 미워하고 답답해 했던 것이다.

 

 정말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것도 모르고 나 혼자 속앓이하며 스스로 옹고집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연애를 할 때도"너가 내 마음을 몰라준게 잘못이지." 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며, 내가 원하는 행동이나 답을 듣지 못하면 이내 토라져서 입을 쭈욱 내미는 나는 어른실격이다.

 

 정말 많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고 다른 시각도 볼 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가장 중요한 나의 편견을 벗어내지 못하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항상 기억하자. 타인을 답답해 하지마라.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다보면 그럴 만한 이유를 이해할테니

답답해 하지말고 해결사가 되려고도 하지말자. 그사람의 해결사는 그 사람안에 있다.

​ 며칠전에 화수목 짧은 2박 3일로 일본 도쿄를 여행하고 돌아왔다.

 

 공항에서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신한은행에서 어플로 환전신청한걸 받아두고 가려는데 공항 책방의 선생님께서 이책을 손에 쥐시고 책정리를 하는걸 본 순간 "이쯤되면 사야하는 운명이구나 사자." 하는 생각이 들어 정가를 주고 '모모요는 아직 아흔살'을 사서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모모요는 아직 아흔살이 처음 등장하던 시기, 핑크색이 아기자기한 책이 이뻐 눈길을 끌었고 제목이 아주 내스타일이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구매까지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 후로부터 자주 책방에서도 이 책을 만났었다. 그런데도 구매로 이어지진 않았다. 여전히 나는 이 책을 구매하게 될 운명이면 언젠가 구매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나의 선택을 미래의 나에게 책임을 전가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공항에서 만난 순간, 더 고민하지 말고 사자, 마침 도쿄로 떠나기도 하니까 읽으면서 이 책의 도쿄와 내가 가서 볼 도쿄의 공간을 같이 활용해보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서문이나 분위기로 봐선 아흔살 할머니가 도쿄에 가서 [편견]을 깨부시고 여행을 하며 젊은이들에게 자극을 전해주는 내용이 이루어 져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공항 서점에서 판매하는 분도 나에게 "우리나라 할매들이 모모요 할매 처럼만 살아도 참 좋을거야" 라며 나의 구매를 부추기는 멘트를 날리시길래, 아 보셨구나 그런 내용 맞겠거니 하고 책을 구매했다. 굳이 그 멘트가 아니여도 사려고 했었지만 그 멘트를 들으니 이 책에 대한 내 생각이 맞나보다 하고 힘을 실어 주었다.

 

 

 그런데 왠걸, 이 책은 내가 생각하고 그 공항 서점 아주머니가 생각한 내용이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을 했다. 그분도 나처럼 서문이나 책 껍데기를 보고 이 책 내용을 추측했었구나,

 왠지 그냥 가서 그 분께 이책 그런 내용아닌데요.. 하고 말씀드리고 싶단 마음이 올라왔다. 마음만 올라왔다.

 

 모모요 할머니의 여행기는 그렇게 화려하지도 우리에게 교훈을 줄만한 내용도 들어있지 않았다.

 다만 여행기에서 인상 깊었던 점이 있다면 하나는 [너무나 정정한 할머니가 아기 판다가 보고 싶어 멀쩡한 허리를 구부리고 말귀못알아 먹는 척하며 판다 관람줄을 역행하다가 안내원한테 걸린 사건] 과  [일본 도쿄엔 할머니의 하라주쿠라는 매력적인 이름의 거리가 있다는 것] 이다. 나머지는 1900년생 모모요할머니의 삶 전반적 일대기를 그려놓은 책이다.

 

 내 예상과 다르고 기존의 여성의 인권이 가정주부로 한정되는 시대의 이야기라 읽는게 꽤나 많이 불편하고 힘들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어이-" 라는 호칭을 쓴다던가 가정에 도움이 되지 않아 그만뒀으면 하는데도 남편이 하는 일이라 여성이 입을 다물고 응원의 말 한마디를 남긴다던가, 여자를 꽃으로 표현하는 등의 부분이 책에 있어 평생 가져갈 필욘 없겠단 생각을 하게 했다.

 

 한편으론 이런 과거의 기록을 남겨두고 한 자료로 사용할까 싶기도 해서 집에 그냥 둘까 생각도 들어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중요한건 자료가 아닌 이상 이 책을 다시 보고 싶진 않을거 같다는 것이다.

 모모요 할머니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에 묻어나는 여성을 대하는 관점이 더 이상 글을 읽을 필요성을 못느끼게 만들었다.

 그런 시대속에서 당차고 활기찬 모모요아가씨라는 인물로 모모요할머니가 등장하는데 그닥... 그렇게 시대를 거스르는 인물같지도 않았다. 다만 아흔이 넘는 나이에도 늙은이라 몸져누워있지 않고 자신의 몸을 쓰며 70,80살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런 모습은 나 역시 나이들면 이런 마인드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여행가고 싶을땐 여행 가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앞으로도 더욱 예술에 종사하며 소일거리가 아닌 일들을 하며 그렇게 쭉 활동성있게 살고 싶단 생각을 하게 해주어서 감사했다.

 

이책이 영 안좋은건 아니다. 이런 사실들이 생각을 하게 하고 문제점을 바라볼 수 있게도 해주는 오히려 좋은책이다.

 

 그중 몇 가지 부분은 자식들이 부모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지 않고 스스로 하는 행위에 대해서 [부모에게는 확실히 충격적인 사건이겠지만, 부모가 시키는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주관을 갖고 제대로 성장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라는 문구가 있는가 하면 [제2차 세계 대전의 끝마무리 즘 일본이 실은 전쟁에서 패하고 있던 순간에도 방송에서는 연신 '쾌거'를 외치는걸 듣고 아이들에게 "이런 건 믿으면 안돼"라고 가르치는 장면]도 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부모님의 말을 잘 듣지 않아 너무 힘들어한다.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도 진짜로 힘들어 하신다. 그리고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라고 말했다가 상처를 엄청 크게 받으시고 나를 혼내키신 일도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음에도 내 나름 설계한 인생설계도를 믿고 그거 하나만 끌어나가는 나를 내 스스로 별종 혹은 독한 고집불통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지금도 여전히 바꿀 생각이나 내 인생흐름에 있어 부모님의 말을 전적으로 따를 생각은 없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주관이 나쁜 아이가 아니고 자기 육체에 부모의 사상이 아닌 나 자신의 사상으로 서 있다는 내 생각을 맞다고 격려해주어 고마웠다.

 

 뉴스의 보도에 대해서 100%믿지 않고 의혹을 가지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모모요의 말에서 자신의 사상이 어느 한곳에 갇힌 사람이 아니구나를 알게되어 속이 시원했다. 내가 너무나 많은 어르신들의 오합지졸 편견속에 살아와서 그랬던거 같다. 누가 앓던 이를 빼주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가장 좋았고 잊지못할 장면은 역시 모모요 할머니의 마인드였다.

 

 [남편을 잃은 모모요는 주변사람들의 오만 걱정에도 아들을 대학까지보낸다. 학비가 저렴한 국립대의 치열한 경쟁속에서도 아들 다케시는 형편때문에 양조장에서 일도 하며 공부도 하는 시간을 보낸다. 주변사람들이 공부시켜라는 오지랖 걱정에 '걱정해줘서 고마워'라는 파워 마인드를 가지며 붙을 사람은 뭘 해도 붙고 떨어질 사람은 뭘해도 떨어진다는 마인드로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중 다케시 하나만 국립대학에 붙었고 이러쿵 저러쿵 쓸데없는 참견과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한방먹였다] -모모요는 아직 아흔살 중.

 

 여기서 드러나는 마인드가 나를 많이 가르쳤다.

 

 우선 나부터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리고 있는 인간이 아닌가에 대한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걱정이란 이름하에 무슨 오만 오지랖을 부리는걸 배우고 자랐는지 그 오지랖이 없는것이 인간관계의 냉혹함을 만든다고 생각도 하겠지만 그걸 구분하는 선은 반드시 있다. 그 선을 잘 지키며 살기만 살아도 개인주의 사회가 아니라 따스한 이웃사회는 될 수 있다. 우리가 아직 그 '정도'의 수련이 되지 않아 오지랖과 무관심의 중간을 찾지 못하는게 많이 안타까웠고 이건 우리라고 할 것도 없이 나에게 반성으로 왔다. 정말 반성하고 살아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두번째는 믿음에 있어서 걱정하지 않는 다는 점.

 잠재의식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져온다. 그런데 이때 믿음을 가지는 마음이 중요한데 단 한순간도 불신을 가져서는 안된다. 이 아이가 헷갈려 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모모요할머니가 강한 마인드를 가진것이 존경스러웠다.

 

 마냥 나쁜 책이라 할 수 없지만 확실히 생각은 많이 하게 해주는 책임은 확실하다.

 모모요를 읽으면서 몇번 피식피식 문자를 보고 웃었다. 중요한건 이때 나도 문자만으로도 미소를 줄 수 있는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는 점이다.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이정도면 꽤 좋은 책이 아닌가 싶다 :-)
 여전히 다시 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오싱처럼 참 마음에 많이 남을 책이 될거같다.

-3년뒤의 나를 떠올려보자.

 

3년뒤면 몇살일까 내가?

 

 아마 ,

2021년 3월일테고 나는 31살의 어른이 되어있을거 같다.

 

 30이 넘었다면서

이제는 10년전이 이십대라는 이야기를 빼먹지 않고 여전히 내 동네 친구들과 만나면 그런이야기를 할거같다.

 

 서로 일로서 자리를 잡아가며 틈틈이 만나는 순간에 우리는 루미큐브를 하면서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을거 같다.

 

 여전히 크게 변한거 없이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 가며 차근히 차근히 그렇게 하루들을 살아가고 있을거같다.

 

 책을 쓰고 싶어했던 친구와 나는 책이 나왔을테고 원하는 게 많은 나는 그걸 이루어 내며 시간들을 보내며 여전히 책을 읽고 운동과 언어와 연애를 하며 그런 시간들을 보낼거 같다.

 

 몇 달전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 거리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때 바라던 스물 다섯의 어른은 내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스물일곱의 어른이 되었고 지금 가진 능력들은 이정도로 있고 책이 그렇게 싫었는데 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성장하는 과정에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넘치는 결핍이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서른엔 어떠어떠한 모습의 나를 상상하고 있는 걸 보면서

그냥 하루하루 쌓이는 내가 서른이 되는거지 어느날 그게 뿅하게 되는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는구나 -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오늘 내가 하는 영어가 서른에 또 어떤 도움을 줄것이고 오늘 내가 하는 일이 읽는 책이 나에게 묻혀져 표현되는거지 뿅하는 마술은 없구나 알게되었다.

 

서른의 나와 오늘의 나는 완전 다른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는 바보짓을 하고 있었다.

 

조금 머쓱하면서 아 오늘 하루를 나는 잘 살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삼년뒤 2021년의 나라면 아마 여전히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친구들과 수다떠는걸 굉장히 좋아하면서 사람사이의 관계를 고민하고 성장하고 생각하는 시간들을 보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나로 있겠지.

 참 다행이다

 

 어느 순간에도 내가 내가 아닌 순간은 싫다.

 내가 원하는 사명을 잊지말고 그 행복과 마음을 모두에게 지금처럼 나눠주는 인간으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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